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 여기서 시작했고, 여기서 끝내야 할 - <케이 넘버>의 방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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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시작했고, 여기서 끝내야 할 – <케이 넘버>의 방황 송아름(영화평론가) 해외로 입양되었던 미오카는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한국을 찾는다. 방문의 목적은 예상할 수 있듯 한국에 있을 가족을 찾기 위해서이다. 1974년 길에서 발견된 미오카는 ‘김미옥’이라는 이름의 ‘기아(棄兒)아동’으로 ‘기록’되었고, 보호소와 보육원, 위탁가정을 거쳐 미국으로 보내졌다. 미국은 6살의 어린 이방인을 환영하지 않았고 미옥이라는 이름에 A를 붙여 ‘미오카’라는, 미국에 익숙한 이름으로 바꾸었을 때에야 약간의 숨을 틔워주었다. 이러한 그의 삶을 미루어 그가 겪었을 고통을 어느 정도 짐작한다 해도, 그의 인생에서 기억조차 선명하지 않은 모국에서의 6년과 터전을 잡고 살아간 미국에서의 40년 이상의 세월은 너무도 큰 차이가 아닐까. 아마도 이런 생각으로 많은 이들은 질문할 것이다. 도대체 왜 과거를 찾으려는 것이냐고. 미오카는 이에 대해 분명히 답한다. 자신은 버림받은 기억이 없기에 엄마가 나의 실종으로 평생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그래서 너무나 미안해 사과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이 대답이 뚜렷하지 않은 기억에 기댄 바람이라 할 지 모른다. 그리고 다큐 <케이 넘버>는 이러한 시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우리에게 입양은 버림받은 혹은 버림받을지 모르는 아이에게 최선이며 이곳보다 훨씬 나은 환경을 약속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오랫동안 주입돼 있다는 것도, 게다가 해외 입양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불쌍한 아이들을 보낸 것이라는 매우 단편적인 지식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케이 넘버>는 바로 이 안온하고 얕은 인식에 돌을 던진다. 만약 미오카의 기억이 맞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리고 정말로 ‘버려지지 않은 이’가 의도적으로 ‘버려진 이’가 된 것이라면 또 어떻게 하겠느냐고. <케이 넘버>는 이 섬뜩한 질문 던지고 그 중심에 바로 이 나라,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적시한다.
<케이 넘버>는 전쟁 직후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를 훑으며 해외 입양이 짧은 시간 몇몇 기관만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그 배후에 국가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간다. 혼혈아 해외 입양자를 위해 당사자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는 대리 입양제를 구축하고 고아입양특례법으로 4개의 기관만이 해외 입양이 가능하게 만들며 권한을 부여한 제도적 측면에서부터, 아이들의 입양을 통해 얻으려 했던 경제적 이익, 한국 아이들의 입양 조절을 통해 입양을 원하는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남한을 옹호할 수 있게 만들었던 정치적 거래에 이르기까지 해외 입양 과정에 국가가 얼마나 큰 역할을, 얼마나 계산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는지 하나 하나 훑어간다. 특히 아동들의 해외 입양을 위해 아이에게 호주(戶主)의 호적을 만들어 친부모와의 호적을 말소시키기까지 한 행정적 절차는 ‘강제적’ 해외 입양에 국가가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는지를 확실히 각인시킨다. 이 사이 아이들은 ‘넘버’가 적힌 채 사진이 찍혔고, 단체로 비행기를 실려 이동했다. 갓난 아기를 다루지도 못하는 이들 손에 서너명씩 맡겨진 채, 비행을 견디지 못한 누군가는 죽어가며 그렇게 나라에서 ‘사라졌다.’
국가가 구축해갔던 해외 입양 과정은 각 나라로 입양되었던 이들이 가진 의문점들, 그러니까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왜 제대로 된 서류를 내어주지 않는지, 어떻게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처음 보는 서류들이 자꾸 발견되는지 등에 대한 간접적인 답이라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결코 말할 수 없었던 ‘지하(地下)’가 있었다는 것, <케이 넘버>는 이에 대해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케이 넘버>는 한 장의 공문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이 사실을 국가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명시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직전, ‘국외입양 사업’에 대한 ‘그릇된 내용이 국외에 알려질 경우 국가 위신이 실추될 우려가 있’다며 국외 입양의 기한을 제한하고 입양 기관이 같은 비행기를 이용하여 동반 출국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이 공문의 내용은 현재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 ‘그릇된 내용’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투명하게 고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가가 개입한 일이었기에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도 따르겠지만, 이에 대해 국가는 어떠한 포즈조차 취하지 않았다. <케이 넘버>는 해외로 입양된 이들이 입양된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불법체류자가 되거나, 양부모가 아이를 볼 수 없던 시스템의 폐해로 겪어야 했던 고통 등과 같이 문제로 시작한 ‘사업’이 낳은 또 다른 문제들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에 대해 당연하게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최종적인 문제를 미국 추방 입양인 아담 크랩서의 소송 과정으로 설명해낸다. 법원은 아동의 국외 입양과정에서 국적 취득 확인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아담의 소송에 대해 입양 기관의 잘못만을 인정했고(다큐에선 이 1심의 결과까지만을 담고 있다. 2025년 1월, 2심에선 기관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단조차 뒤집혔다.), 국가의 책임은 배제시켰다. 이러한 판단을 내리는 국가가 과연 해외로 입양한, 아니 보내버린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나 있을까. <케이 넘버>는 너무도 오랫동안 이야기되지 않았던 바로 이 현실을 뚜렷이 직시하도록 요청한다.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나 요한슨은 입양된 이들에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통계와 편견이 자리하고 있는지 한참 열변을 토하다 한국인들이 해외 입양과 입양인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가 궁금했다고 말한다. 자신은 ‘평범한 한국인’, 그러니까 입양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본 적도, 그럴 기회도 없기에 입양에 대해 한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만약 한국 사람들은 입양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대도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고, 평범한 한국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 한나의 말에는 분명한 기대가 담겨 있다.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은 입양에 대해 적어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자신의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까지가 이 말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케이 넘버>가 입양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는지, 그것에 잘못이 있었다면 어떻게 인정하고 책임을 지도록 만들지에 대해 고민할 때, 우리는 번호가 매겨진 채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위로를 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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