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 세대 갈등을 넘는 자본과의 응전 - 영화 <소주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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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 갈등을 넘는 자본과의 응전 – 영화 <소주전쟁> 송아름(영화평론가) 그런 시선이 있다. 이 세대에 비해 저 세대는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며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다는. 대체로 ‘이 세대’에는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믿고 따랐던 기성세대가, ‘저 세대’에는 굳이 왜 그래야 하느냐는 질문을 가진 새롭게 부상하는 세대가 자리잡는다. 당연히 어떤 나이라고 특정할 수 있는 세대는 없다. ‘이 세대’도 이기적이라 불리던 때가 있었고, ‘저 세대’도 언젠가 또 다른 저 세대를 맞아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이 세대’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좀 더 옳고 바르며 인간적인 것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저 세대’를 대면하며 우리 때는 저 정도가 아니었다는 입버릇으로 저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혹은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우리는 적어도 저들이 보인 것과 같은 냉정함이나 개인주의적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자신하며 저들을 지적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희미한 범주를 마치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규정하는 것이다.
사실 영화 <소주전쟁>은 이러한 구도로 의미화하기에 매우 편하고도 충분한 요소를 지녔다. 해외 자본으로 움직이는 회사 솔퀸에서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무시를 당하면서도 성공을 꿈꾸는 인범(이제훈), 한국 최대의 소주 회사에 일생을 바치며 회사의 운명을 곧 나의 운명으로 생각하는 국보그룹의 재무이사 종록(유해진)은 그들이 기대고 있는 자본에 있어서도 나이나 지향점에 있어서도 세대적 가름을 어색하지 않게 한다. 이쯤에서 멈춘다면 두 사람의 설정은 특정 세대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도지만, 여기에 IMF라는 상황을 얹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에서 성장한 기업을 외국 회사로 팔아넘기려는 인범과 이 회사를 어떻게든 지켜내어 자신도 그리고 그룹도 살리려는 종록 사이에는 선악의 구도가 비치기 때문이다. 특히 인범이 종록과 가까워지며 그가 보여주었던 친밀함이 모두 탈취를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 드러날 때 선악의 구도는 더욱 짙어진다.
그러나 <소주전쟁>은 이러한 두 세대 중 어느 한 쪽이 더 나은 것이라 쉽사리 규정짓지 않는다. 그러니까 종록이 가지고 있는 ‘자국’의 ‘기업’을 ‘지킨다’는 의지가 ‘타국’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빼앗는다’는 생각을 가진 인범의 목표보다 더 낫다는 식의 우위를 정하지 않는 것이다. 영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종록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회장(손현주)을 보며 자신의 희생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며, 인범 역시 자기가 행했던 방식과 비슷하게 자리를 빼앗기며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가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한다. 마치 두 사람이 제 발등을 찧은 듯한 상황 속에 배치시키며 서로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인정을 생각하여 또는 애국심이나 애사심에 기대어 그래도 ‘우리’가 함께 성장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온정을 바랐던 이야기들이 오랫동안 인범과 비슷한 이들을 부정적으로 그려온 것과는 차별되는 시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가능한 것은 두 세대 사이의 선악 구도가 불가능하게 만들만큼 더 강력한 갈등의 원인 때문이었다.
<소주전쟁>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인범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기회주의적인 인물인 변호사 영모(최영준)가 자신을 비난하는 인범에게 ‘하나만 하라’며 욕이 섞인 대사를 던지던 순간이었다. 이는 뭐가 더 낫느니 판단해봤자 그것은 인범이나 종록처럼 그저 회사원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나만큼의 위치에서 나만큼 양심을 버려야 지금 이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명시한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주전쟁>은 국보그룹을 둘러싼 문제를 인범과 종록 두 사람만의 이야기로 한정하지 않으면서 세대적 선악을 뛰어 넘는다. 이를 무력하게 만드는 돈 앞에서 감정 속 무딘 날을 세우던 ‘소시민’의 세대적 구도는 필요없어진다. 윤리보다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것을 먼저 따지는 영모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까 연일 호소하는 데도 골프채를 휘두르는 회장이 마시는 술은 양주라는 것, 그들의 손엔 단 한 번도 소주잔이 쥐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소주잔을 기울여야 하는 많은 이들과 영모나 회장과는 결코 공명할 수 없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그들만의 논리 안에서 배신을 당한 인범은 그래도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복수를 준비한다. 그리고 종록은 인범이 말했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서로 비난했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방식이었지만 두 사람은 더 큰 위기 앞에서 서로가 추구하던 가치를 인정했고 또 수용했다. <소주전쟁>은 IMF 시기 벌어졌던 과거를 소환하면서 더 냉혹해진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세대 갈등조차 사소하게 만들어 버린 무수한 사건들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더 냉혹해질지 모른다. 비슷한 시기를 다루었던 <국가부도의 날>(2018)에서 정학(유아인)은 국가의 위기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자신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것들에 거액을 배팅했었다. 점점 높아지는 수익에 과하게 행복해하는 이에게 따귀를 날리는, 자신 역시 윤리를 저버렸으면서도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속물성에 분노하는 이는 더 이상 없다. <소주전쟁>이 그리고 있는 전쟁은 어쩌면 그때가 아니라 지금일지도 모르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