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 결국 삶을 이뤄낼, 나와 당신의 일 - <일과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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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삶을 이뤄낼, 나와 당신의 일 - <일과 날> 송아름(영화평론가) 무수한 일이 담고 있는 무수한 가치가 너무도 쉽게 환산된다. ‘얼마’라는 금액이 일의 전부인 양 재고, 가늠하고, 판단하는 것은 일의 의미를 묻는 것 자체를 심상한 일로 만들어 버렸다. 이 사이에서 그 일이 무엇일지, 어떤 마음으로 지속하고 있는지, 일의 고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등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일은 내가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방해하는 그러니까 쉬고 싶고, 놀고 싶고, 혹은 지금에 머무르고 있다는 불안을 잠재워줄 자기계발과 멀어지도록 만드는 짐이 되어 버린다. 일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될 때, 일은 나의 여유를 빼앗는 억울함이 되고 쉽게 돈버는 듯 보이는 이들을 향한 미움을 발산하는 것이다. 삶과 일이 결코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일의 도구화는 꽤나 무서운 일이다. <일과 날>이 파고드는 것은 바로 이 답답함이다. 과연 일의 가치는 무엇으로 재단되는 것일까? 혹은 재단할 수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일을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지금쯤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일에 대한 과잉 수치화와 거리를 두는 이 질문들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고민을 일으킨다.
<일과 날>은 제목 그대로 일로 자신의 날을 채우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이도, 집안일을 하며 육아에 집중하는 이도, 마네킹을 만들고 소금을 만드는 이도, 학원의 사무직과 재활용품을 분리하는 이도, 영상을 찍고 전파상을 운영하는 이도 그 일의 성격이나 경중 등을 따질 수 없다는 듯 하나의 일의 영역에서 바라본다. 어떻게든 노동과 그 결과의 ‘급’을 나누려는 현실 속에서 <일과 날>은 이 낯선 집합처럼 보이는 노동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세세히 들여다 본다. 과연 우리에게 일은 무엇이었나에 대한 착실한 답들은 노동을 하고 있는 이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잠시간 휴식의 편안함을 만끽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자연스레 느껴진다. 일을 통해 사회와 만나고 또 일을 통해 지금의 삶을 꾸려 나가고, 누군가는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내가 아니면 없어질지도 모르는 일을 붙잡는 데에 이르기까지 <일과 날>에 담긴 일의 단면들은 켜켜이 쌓여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다양한 일들이 새삼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문득 상기키신다.
이처럼 영화는 왜곡된 방식으로 인식되어 온 일의 의미를 되짚으며 애초에 우리가 어떤 이유로 일에 접근하고 있었는지를 자연스레 드러낸다. 너무 좋아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어서 혹은 뿌듯함을 끌어내서 등등은 우리가 처음 어떤 일을 선택할 때에 빠질 수 없는 이유였을 테지만, 시간에 치이며 피곤하기도 하고 막상 가족들을 위해 움직이고 있지만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등의 고충 속 불청객을 마주하게 하기도 했다. 영화는 이러한 일의 당연한 이면에 특별한 평가를 내리지 않은 채, 이 모든 것을 안고 노동하는 이들의 모습을 차분히 교차시킨다. 다양한 삶 속에 녹아 있는 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노동의 의미는 충분해지고 그렇게 일에 대한 시선은 여러 곳을 오갈 수 있다. 나의 시간과 힘을 들여 유형 혹은 무형의 무엇이라도 생산했다면, 설사 그 내부에 어려움이 있다해도 그것까지 노동으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가닿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곧 자신의 일상을 떠올리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일과 날>은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현재의 일을 완성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틀에 담겨 있던 마네킹은 천천히 그 모습을 갖추어가고,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있는 듯 보이던 전파상에서는 온열기가 수리되어 따스한 빛을 낸다. 물론 어떤 일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반복되기에 일의 완성을 기약하기 어려울 수도, 마치 아이가 자라는 것처럼 또 어떤 일은 완성이라는 의미가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이 미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가치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완성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과 날>은 이 순간들을 포착하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 그리고 그 속에서 일 이상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들을 통해 많은 일 그 자체가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어렵지 않게 드러낸다. 이러한 일에 대한 불안 혹은 위협은 일 자체가 아닌, 일을 할 수 없게 될지 모르는 미래의 언젠가에 대한 짐작이다. 일의 사이사이 혹은 휴식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뉴스들은 기후 위기나 AI의 발전으로 인간이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될 지 모르는 언젠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하는 일이 없어질지도 그래서 이 일로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내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안은 실현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이 불안 속에서 스스로의 일을 지키겠다는 의연한 모습을 비추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닥친다 해도 나 스스로를 떳떳하게 만들어줄 일에 대한 믿음과 실행을 놓지 않겠다 결심하는 이들은 곧 일로 채워갈 수밖에 없는 날들을 살아가는 모두의 모습이 될 수 있다. 일을 향한 찬사, 이것으로 인해 더욱 확대되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 결국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 속에 <일과 날>은 천천히 나아간다. 그 믿음은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일이 만들어갈 날들에 충분한 응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