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 내가 있는, 있고 싶은,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 나를 흔들 때 - 영화 <3670> |
|---|
![]() 내가 있는, 있고 싶은,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 나를 흔들 때 – 영화 <3670> 송아름(영화평론가) 3671, 3672, 3673. 대화창에서 숫자로만 대화가 이어진다. 다음에 이어질 숫자가 3674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해도 그 의미를 알아야 이 숫자를 쓸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약속된 숫자로 진행되는 대화,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나는 대화창에 있는 이들과 하나라는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3674를 이어쓴다. 나는 종로 3가 6번 출구에서 7시에 만나기로 한 네 번째 사람이 된다. 영화 <3670>은 이러한 약속을 아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제목이다. 누군가에겐 익숙하겠지만 이를 알지 못해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이들이 다수일 것이며, 안다 해도 한 명 혹은 두 명으로 헤아려지지 않는 0이란 숫자는 의아하다. 이 의아함은 곧 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 어렵게 비집고 들어가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그 동질성이 불러들이는 비교와 혼란. 영화는 이 의심스럽고도 모순적인 감각을 고스란히 펼쳐 놓는다.
영화는 탈북자와 성소수자라는 집단 속에서 교집합을 그리고 있는 철준(조유현)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세운다. 철준은 늘 비슷한 감정과 상황, 말투 등을 공유하는 탈북자 커뮤니티를 벗어나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한다. 게이인 자신을 편히 드러낼 수 있는 곳, 철준은 새로운 곳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갈망하고 그 안에 포함되기 위해 노력한다. <3670>은 철준이 게이 커뮤니티에 천천히 스며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철준의 오랜 외로움과 힘겨움이 조금씩 잦아드는 것을 중심에 두는 것처럼 보인다. 수줍고 어색하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철준을 조금씩 다른 집단에 속하게 만들고, 이 모임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영준(김현목)과의 관계를 통해 좀 더 친밀한 게이들의 동갑 모임에 까지 이른다. 철준은 탈북자 친구들이 아닌 이들을 처음으로 집에 들이고 북적이는 모습에 행복해 한다. 그러나 영화는 철준이 가장 원하는 관계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든다.
게이 친구들이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며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그만큼의 위험을 각오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모임은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게이 동갑모임은 소속감의 경중을 재며 철준과 영준을, 그리고 둘 사이를 지속적으로 지치게 만든다. 97년생 동갑이며 게이라는 이유로 모임에 끼어든 철준은 동질감으로 관심을 받고 또 호감을 발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철준을 모임에 데리고 갔던 영준은 철준에 대한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불편해진다. 너무 깊고 작은 집단이기에 함께하는 만큼 관심과 감정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모임의 특성은 기존의 멤버들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철준이 다른 이들과 친해질수록 자신에겐 없는 매력을 가진 철준을 바라보는 영준의 열등감이 부각되는 것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영준은 처음 철준에 대한 관심을,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철준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영준은 철준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치켜세우면서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조금씩 깎아내린다. 철준만큼 외모가 좋지 않고, 또 철준이처럼 엄청난 삶의 역경을 이겨낸 적도 없으며, 무엇보다 자신에게 관심이 없던 철준을 자신이 좋아한다는 것 역시 영준을 괴롭게 한다. 영준은 철준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농담이나 갑작스레 밀어내는 것으로 엉뚱하게 표현하고 조금씩 철준과의 거리를 벌려간다. 그러나 철준의 감정은 영준과는 다르게 흘러 간다. 처음 철준에게 영준은 친근하게 다가와 새로운 커뮤니티로 인도해 준 밝은 친구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하지 않거나 갑작스레 변하는 표정이 신경쓰이면서 천천히 영준을 향하고 있던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다른 감정을 튕겨내던 둘 사이는 쉽사리 가까워질 수 없고 솔직해지기도 쉽지 않다.
영화는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밀고 당김 속에 영준과 철준을 배치하면서 너무나 잘 알고 내밀하기에 더욱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강한 소속감의 이면을 그려낸다. 그들이 동갑이기에 쉽게 친해질 수 있지만 쉽게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영화가 바라보는 소속의 영역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드러낸다. 철준은 자신의 계획대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의 서류전형에 합격한다. 이를 응원해주고 또 도와주던 영준은 철준과는 다르게 뿌옇기만 한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며 갑작스레 철준에게 날선 말을 하거나 먼저 커뮤니티에 함께하던 이들과 철준을 가십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같은 나이로 같은 사회를 살아간다는 이유로 상대와 자신의 우위를 재던 영준은 결국 자신을 향하는 철준의 마음까지 의심하며 멀어진다.
<3670>은 게이 커뮤니티의 속성을 통해 가깝기에 멀어질 수밖에 없는 친밀함의 역설을 높은 온도로 파헤친다. 인물들을 오가는 감정이나 이를 감싸고 있는 다양한 공간들, 그리고 평소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의 집단 내의 독특한 생리를 가시화하면서 영화는 끓고 있지만 전달하고 있는 내용은 갑작스레 변화하는 영준의 표정 만큼이나 차갑고 냉정하다. 영준과 철준에게 응원을 보내면서도 솔직하지 못한 영준이, 또 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다가가는 철준이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하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장난스레, 또 가벼운 듯 스스로를 꾸미는 듯한 영준의 모습은 비교의 대상이 되었던 많은 이들의 가면을 상기시키며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게 한다. 외로움을 피한 곳에서 넌 너를 지키고 있느냐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