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 감정이라는 특권의 월경(越境): 기억, 로봇 그리고 사랑 - <어쩌면 해피엔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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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이라는 특권의 월경(越境): 기억, 로봇 그리고 사랑 - <어쩌면 해피엔딩> 송아름(영화평론가) 인공지능으로 불리든, 로봇으로 불리든 설계로 만들어진 기계들이 결코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감정의 유무에 기댄 것이었다. 아무리 인간과 똑같은 외형이라 해도 입력된 것들만 수행할 뿐 인간을 대체할 수는 없을 테니 필요 없어지면 버려도 된다는 것, 그렇게 한대도 그것은 어떠한 불만도 느끼지 않을 것이니 괜찮다는 안도, 거기에 기계의 무감각이 있었다. 이에 영화는 과연 정말 그럴까 라는 질문을 종종 던져 왔다. 누군가의 아들이 되고 싶어 하거나(<Ai>(2001)), 누군가의 애인이 되어 주기도 하고(<그녀>(2014)), 오롯이 한 가정의 일원으로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보듬어주는 기기들로(<애프터 양>(2022))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협소한지를 묻곤 했다. 그러나 이 영화 속 기기들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향해 혹은 위해 감정을 만들어갔다는 점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의 접근이긴 했다. 즉 결국 로봇도 인간처럼 살고 싶을 것이라는 상상의 발현, 그것이 지금까지 영화에서 그려온 로봇이었다. 그럼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인간이 없을 때 기계들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고철 덩어리들로 그저 메뉴얼에 맞춰 뚝딱대다 녹슬어 가는 걸까? 사람들은 이주하고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 로봇들은 주인을 잃었다. 더 이상의 생산도 수리도 중단되고 충전기는 고장나 불안해진다. 이제 도울 이도 도움을 요청할 이도 로봇뿐이다. 잘 알려진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어쩌면 해피엔딩>은 이 설정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인간의 도움 없이도 아주 잘 살아가는, 사랑하는 그들의 삶을 다시 쓴다. 영화는 그 중심에 기억을 놓고 되묻는다. 과연 인간이기에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기억이 남아 있다면 감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든 로봇이듯 그 물성과는 상관없이. 영화는 기억과 회상과 추억으로 그려지는 로봇들만의 하루하루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올리버(신주협)는 자신을 착한 아이이자 좋은 친구로 불러주던 주인 제임스(유준상)가 떠났지만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 속에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동일한 시간에 잡지를 받고 청소를 하며, 먼지가 많은 날도 흐린 날도 그에게는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늘 제임스와 함께 했던 때처럼 평온한 날들을 보내던 올리버의 일상에 충전기를 빌려달라며 들이닥친 갑작스레 클레어가 끼어든다. 불편하기만 한 클레어를 특별히 도와줄 이유도 그럴 생각도 없던 올리버의 마음을 흔든 것은 너의 이런 모습을 주인이 싫어할 것이라는 클레어의 말 한 마디였다. 바로 이 장면에서 이 작품은 두 로봇이 무엇 때문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로를 사랑하게 될 수 있는지, 그러니까 올리버를 흔들리게 하는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보여준다. 쉽사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던 바로 그것, 그 감정의 발현은 영화를 기억에 두고 나아간다.
올리버는 집을 보살피며 따뜻했던 제임스를 자주 떠올렸다.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 피아노를 치던 제임스와 떠나면서도 슬프게 자신을 바라보던 그 모습은 분명 올리버에게 남아 있는 기억이다. 그것이 메모리에 입력된 것이든 기억으로 마음에 남은 것이든 올리버가 제임스를 그리워하고 기다리게 한 힘이었다. 그리고 이제 제임스의 기억으로 가득찼던 올리버의 공간에 클레어가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함께 기억을 만들어가는 두 로봇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로봇들은 충전을 위해 둘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던 반딧불이를 보며 서로의 모습을 담고, 서로의 상처를 치료하며 사랑을 느낀다. 어느 순간 클레어는 심장이 뛰는 듯한 느낌에 놀라고 올리버는 고장 난 클레어를 어떻게든 치료해주고자 간절해진다.
영화는 무대에서 보여주기 힘들었을 잦은 플래시백을 통해 올리버와 클레어의 기억을 짚어가며 두 로봇의 현재를 설명한다. 자신의 주인을 특정한 이로 지칭하며 ‘사람’이라 부를 수 있던 올리버와 주인에게 이용당하고 상처받아 그저 종(種)을 지칭하는 ‘인간’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던 클레어는 전혀 다른 기억을 가진 채 만났지만, 이제 서로의 기억으로 자신의 생각이 조금씩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들 앞에 끝이 다가왔다고 느낄 때 그들은 사랑하기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불필요한 사실까지 알게 된다. 잦은 고장을 겪는 클레어를 보며 올리버는 이 슬픈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의아해지고, 올리버보다 앞선 버전이었던 헬퍼 로봇 클레어는 이제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투하는 올리버의 모습에 괴로워진다. 두 로봇은 알고 있다. 이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메모리를 지워 기억을 없애는 일이다. 간단하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제임스와의 공간이 클레어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차 고통스럽던 올리버도 그것을 느끼고 있던 클레어도 메모리를 지운다면 자신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안다. 그러나 클레어의 제안에 올리버는 괜찮다는 말을 반복한다. 분명 로봇임에도 올리버 눈가에 고인 눈물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은 이 작품이 올리버가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이러한 감정이 비단 인간의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보여준 올리버의 선택은 앞으로도 얼마나 오랫동안 홀로 견디어낼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리게 한다. 그래도 클레어와의 시간과 기억은 올리버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영화 초반과 마지막 올리버의 얼굴이 낯이 익는다는 클레어의 말은 그 힘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를 곱씹게 한다.
<어쩌면 해피엔딩> 속 아련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음악에 스며있다. 각각의 넘버들은 천천히 먼저 흐르고 있던 음악에 맞춰 시작되고 지금 그들이 느끼고 있을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담담하게 주고받는 대화는 그들이 쌓아가는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많은 뮤지컬 영화의 화려함과는 거리를 둔 채 빈티지한 공간에 놓인 올리버와 클레어의 모습만으로 새로운 뮤지컬 영화의 시작을 장식했다. 작은 화분과 피아노, LP와 잡지가 가득 쌓인 공간에서 오롯이 두 로봇이 끌고 가는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그들만의 것이 되었다. 로봇이든 인간이든 좋은 기억이 있는 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겠지만, 오히려 로봇들의 사랑이 훨씬 더 오랫동안 지속되며 분명한 해피엔딩을 맞이할 지도 모를 일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