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 수치심과 상실에 대한 원망의 제 방향 찾기 - 다큐 <양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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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치심과 상실에 대한 원망의 제 방향 찾기 – 다큐 <양양> 송아름(영화평론가) 갑작스레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로 알게 된 또 다른 가족, 그리고 그의 죽음, 게다가 그의 죽음을 나와 연결짓는 데에서 온 의아함. 이 비밀스런 궁금증은 양주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양양>의 시작이었다. 감독은 아버지의 전화로 인해 돌아가신 고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어떻게 이렇게나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듣지 못했는지 의문을 가진다. 도대체 왜 가족들은 고모의 죽음을 그리도 꼭꼭 숨겼을까, 왜 마치 없는 사람인 양 고모를 완벽하게 지운 것일까, 그리고 왜 아버지는 갑자기 고모처럼 죽지 말라는 이야기를 딸에게 했던 것일까. 이 모든 의문을 안고 감독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난 고모의 이야기를 쫓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꽤나 평온하고 행복하게 자랐다고 생각했던 감독의 과거와 현재에 갑작스런 균열을 드리운다. <양양>은 고모의 삶을 추적하며 여성인 자신의 삶과 겹쳐보는 감독을 통해 지워져야 했던 여성들의 삶과 그 원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다. 감독은 특별한 기억도 이야기할 것도 없다는 가족들을 지나 양지영이라는 고모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을 찾기 시작한다. 고모는 열심히 공부했고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절대 허락하지 않는 아버지를 거역하지 못해 고향에 남아 대학을 다녔다. 고모가 대학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간 흔적은 많은 이들이 분명히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그를 기억하던 이들은 지영 씨가 시를 좋아하고 또 잘 썼고, 남자를 만나기 위해 동아리를 들어왔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던 그 시절 볼 수 없던 여성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기억되지 않던, 그리고 조용히 지냈어야 했던 집에서의 고모의 모습과 밖에선 또렷이 각인될 만한 고모의 전혀 다른 모습. 감독은 이처럼 달랐던 고모의 모습이 마치 자신과 같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감독은 영화 전체를 통해 이 상황에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바깥에선 많은 의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기록하는 이이면서도 집에서는 움츠러 드는가. 이 질문은 1975년까지 고모의 사진이 남아 있지만 1970년에 고모의 사망 신고가 되어 있는 기록의 모순이나 고모의 죽음에 대해 아버지와 대학 친구들의 왜 전혀 다른 진술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까지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즉 <양양>이 숨겨진 고모의 죽음을 되돌아보는 것은 고모의 죽음을 숨겨야 한다는 근저에 무엇이 깔려 있었는지를 파악하려는 의도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양양>은 밝혀내기 시작한다. 가족들이 고모가 성인이 되지 않은 채 사망한 것으로 남기고 싶었던 그 바탕에, 그리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왜곡했던 가족들의 마음에 연인 간 폭력으로 사망한 딸을 부끄러워했던 그 마음이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양양>을 통해 감독은 말한다. 딸을 사망하게 만든 이를 처벌하는 것보다 남자의 집에서 사망한 누나의 흔적을 지우는 것에 더욱 급급했던 것, 바로 여기에 가부장제와 같은 딸을 그리고 여성을 내리두르던 거대한 힘이 숨어 있었다고 말이다. 감독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인터뷰하며 그래도 아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는 아버지의 말에, 그래도 동생보다는 네가 더 요리를 잘하니 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어머니의 말에 조금은 허망한 듯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오래 보여주었다. 할아버지가 딸들을 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아들과 딸에 분명한 차이를 두었던 아버지나, 아들이 요리를 못하는 것은 아들에겐 시키지 않아서일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떠올리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족쇄가 매우 오랫동안 뿌리내려 딸에게 극단적인 피해가 간대도 분노가 아닌 부끄러움이 앞설 수밖에 없이 만든다는 것을 아마 그들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감독은 고모의 죽음을 추적하며 과거 비슷한 죽음을 맞이했던 많은 이들은 기사들을 훑어간다. 신문은 사망한 여성의 이름과 얼굴, 전신 사진에 이르기까지 피해자 여성을 전시했으면서도 판결은 가해자 중심이 되는 이 상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남성의 아래에 놓이는 여성, 밖으로 튀면 안되는 이들, 이때 여성들이 혹여 모난 듯 보이는 행동을 할 때 감추는 것으로 흘러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경로였다. 이런 사회에서 감독이 평범하고도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던 것은 여행을 다녀온 할아버지가 손녀이면서 누나인 자신에겐 12색 크레파스를, 그리고 손자이면서 동생인 남동생에겐 24색의 크레파스를 주었던 기억과 그때의 서운함을 멀리 눌러놓은 결과였다. 아주 작게 그러나 깊이 남아있는 이 차별들은 누군가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누군가가 자기검열을 하는 것 역시 당연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아버지가 고모의 죽음의 진실을 정확하게 받아들인 후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는 부분이었다. 아버지는 고모가 집에서 사망을 했고 전남대 병원으로 옮기긴 했지만 누가 어떻게 병원으로까지 갔는지 그 기억은 명확지 않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딸이 내민 편지를 읽은 후에야 솔직한 그날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누나가 전대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착을 했을 때에는 이미 사망한 후였고, 그 뒤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할아버지가 조금 덜 엄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그러나 아버지는 이에 대해 끝내 할아버지에게 하지 못했고 그렇게 누나 역시 마음에 담아버린 것이었다. <양양>은 무엇이 누나를 죽음으로 이끌었는지 토로하는 남동생의 한 마디 한 마디를 통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결국 제대로 된 답을 이끌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감독의 제안으로 가족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를 이장하며 고모의 이름까지가 새겨진 새로운 묘비를 안착시켜 고모의 자리를 찾아준다. 그리고 감독은 부모님께 엄마가 되었음을 알리고 거리에서 여성의 전화 캠페인에 나선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간다. ‘양양’이 아닌 양지영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가족의 일환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긴 시간과 큰 상처, 그리고 많은 이들의 아픔이 있었지만, 감독 양주연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관심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파헤쳐 바로 잡는 과정까지가 동반된 것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수치심을 앞세워야 하는 수많은 양양‘들’의 서사는 1970년대의 고모의 사망을 쫓아가는 경로를 경유하고 또 앞서나가는 노력 속에 조금씩 변화를 그려가고 있다. <양양>에서 조카가 고모에게 보내는 편지를 널리 함께 읽어야 하는 것은, 이것이 분명 좋은 방향으로 흐를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