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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애 (2024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여름이 지나가면> : 처연한 여름의 시선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이미지



<여름이 지나가면> : 처연한 여름의 시선 


장지애 2024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여름이 지나가면>은 흔히 말하는 ‘청춘 영화’의 뼈대를 빌리면서도 그것을 구성하는 핵심 감정들, 예컨대 청춘의 무모함과 성장, 해방의 과정은 희미하게 처리한다. 대신 영화는 인물들 간의 감정적 고조 대신, 시선의 교차와 부재, 관찰과 무관심, 중심과 주변의 위치 바꿈을 통해 정서의 깊이를 천천히 만들어간다.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이미지2


서울에서 시골 학교로 전학 온 기준은 이야기의 명백한 출발점이며,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대리하는 인물로 기능한다. 그는 공간적으로는 외부자이며 정서적으로는 아직 어떤 관계망에도 편입되지 않은 경계의 존재다. 그의 시선은 내러티브 안에서 사건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껴서 관찰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그로 인해 영화는 전면적인 갈등보다는 감정의 여백과 거리감을 조율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보자. 기준은 모친에 의해 시골 학교로 들어선다. 능동적인 진입이 아닌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끌려오는 신체. 기준의 수동성은 그의 시선 구조에도 반영된다. 영화의 초반, 기준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운동화를 잃는 사건이 벌어져도 그는 갈등의 중심에 뛰어들기보다는 주변에 머문 채 상황을 조용히 지켜볼 뿐 아니라, 인물 간의 충돌이 감정적으로 고조 되어가는 와중에도 기준은 관찰자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이미지3


그러나 이 ‘시선의 창’은 점차 이동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낯선 공간 속에서 타인을 관찰하는 시선이 아니라 타인의 자리로 이행하는 시선이 된다. 기준은 방관자의 위치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기존 시선 체계에서 소외되어 있던 영문과 영준 형제의 세계로 다가선다. 여기서 기준의 시선은 어른들의 시선, 선생님의 시선, CCTV의 시선과 명확히 구별된다. 후자는 통제와 감시의 시선인 반면, 기준의 시선은 응시하고 있지만 판단하지 않으며 개입하지 않지만 점차 감응하는 시선이다. 이 차이는 관찰자에서 공존자로의 위치 이동, 곧 윤리적 시선의 생성을 예고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영문과 영준 형제. 이들은 사회적 위계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난 인물들이다. 그들은 학교에서도 교실의 권력 구조에서도 심지어 가정 내부에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진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은 어떤 감시도 보호도 관심도 전제하지 않는 곳에 머무르는 정의되지 않은 인물들이다. 이러한 존재는 영화에서 시선의 부재와 맞물려 있다. 이들을 응시하는 시선이 없기에 이들의 감정이나 행위는 해석되지 못한 채로 유지된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사랑의 언어를 알지 못하듯, 시선을 받지 못한 존재는 자신의 위치를 외부화할 수 없다. 여기서 기준의 시선이 가지는 윤리적 가치가 발현된다.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이미지4


시선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을까? 혹은 아무도 말 걸지 않는 존재에게 보내는 응시 하나가 구원의 가능성을 품을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영화에서 타인을 바라본다는 행위로서의 시선은 그 존재를 사회적 관계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인다. 기준이 영문 형제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의 시선은 주변을 맴돌던 관찰자의 위치에서 감응의 주체로 이행한다. 그리고 그 시선이 신체적 접촉을 동반하는 순간, 두 인물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 이상의 감정적 통로가 열린다. 시선과 신체의 결합은 이 영화가 ‘관계’를 맺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이미지5


하지만 이 섬세한 시선의 구조는 곧 그 반대편에 놓인 무능한 시선의 윤리적 공백과 대비되며, 영화의 침묵이 품고 있는 또 다른 층위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영화 속 어른들의 시선은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을 ‘(돌)보는’ 존재지만 그 시선은 개입이 제거된 감시에 가깝다. 즉, 이들의 시선은 사랑과 관심, 돌봄을 예비하는 듯한 감정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실상 무관심과 무책임의 다른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이미지6


이처럼 시선이 행위로 이어지지 않을 때, 그것은 존재를 확인하면서도 그 존재의 고통을 외면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예리하게 지적한다. 이 무능한 시선은 결과적으로 아이들을 더 고립시키고 시선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허용하는 토대가 된다. 학교 내 위계와 따돌림, 집 안에서 은폐된 폭력, 형제 간의 구조화되지 못한 분노는 모두 성인의 무관여 시선 아래에서 반복된다. 이처럼 ‘보고 있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른들의 시선은 응시의 책임을 회피한 채 관계를 거부하는 비윤리적 감정 체계다. 


그것은 무관심이라기보다는 무기력이다. 그리고 이 무기력의 감정이 바로 ‘처연함’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개인적 정서라기보다 관계가 부재한 세계에서 서서히 스며드는 정조이며,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형성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구조로부터 유입된 감정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태풍과 충동, 감정의 폭발이 청춘의 성장을 밀어붙이는 일본 영화의 여름과도 다르고, 일상의 질서가 잠시 중단된 틈 속에서 느슨해진 자아가 모습을 드러내는 유럽 영화의 여름과도 결을 달리한다. 


이러한 정서는 결과적으로 ‘처연함’이라는 한국적 여름의 특유한 감정 구조를 형성한다. 그것은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의 무능력 다시 말해, 감정이 표현될 수 없는 구조적 억압과 침묵이 만들어 낸 정서에 가깝다. 단지 바라보기만 할 뿐인 시선, 감정을 해석하지 않는 구도, 감정이 흐르지 않는 공간과 사운드. <여름이 지나가면>은 이 모든 형식적 조건들을 통해 관계의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차단된 세계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감정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표현될 수 없도록 억제되고 지연되며 그 무력한 상태로 응고된다. 이 무력은 인물들의 성격이 아니라 세계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이미지7


즉, 이 영화의 ‘처연함’은 누구도 먼저 다가가지 못했던 시선들의 총합이며, 그 여름이 품고 있던 무력한 사랑과 미세한 응시의 윤리는 끝내 인물들 사이에서 해소되지 않은 채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여름이 지나가면>이 여름을 겨냥하면서도 유독 서늘하고 잔인한 감정의 여운을 남기는 까닭은 지나간 계절보다 지나가지 못한 감정들, 그리고 끝내 행위로 이어지지 못한 시선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