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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애 (2024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우리 둘 사이에> : 증명이 아닌 존재에 관하여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이미지



<우리 둘 사이에> : 증명이 아닌 존재에 관하여


장지애 2024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 임신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듯 보이지만, 장애라는 외부 조건보다 한 인물의 내적 움직임을 조심스럽고 꾸준하게 따른다. 장애를 지닌 주인공 은진은 분명 사회적 맥락에서 낯설고 때로는 불편한 시선을 끄는 인물이면서도 영화는 그러한 설정에만 안주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영화는 은진의 주위에 다정하고 섬세한 인물들을 자리시키며 장애인을 향한 불편한 사회적 시선, 다시 말하자면 ‘타자의 시선’ 너머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더욱 집중한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이미지2


예컨대 은진의 남편 호선과 친정엄마는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보려 하거나 반대로 불편한 존재로 밀어내는 대신 그저 사랑을 기반으로 한 평범한 가족으로서 곁을 지킨다. 이들 역시 힘든 몸으로 임신을 감당해야 할 은진을 걱정하지만, 그 걱정은 이들이 희생해 단순히 돌봐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은진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과장되지 않은 주변인과의 관계성 설정 덕분에 은진의 감정과 선택은 조용히 자기 몫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는 점차 장애라는 사회적 범주나 규정에서 조금씩 멀어지며 은진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신체의 변화로 이행한다. 특히 정상이라는 기준으로 작동하던 세계의 질서에서 벗어나 ‘임신’이라는 조금은 낯설고 불균등한 리듬이 은진의 몸에 자리 잡을 때, 은진의 ‘장애’ 역시 더 이상 비장애와 구분하거나 따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감각의 흐름으로 작동한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이미지3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영화가 사건을 극적으로 과장하지 않고, 은진의 신체와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를 담담하게 기록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은진이 홀로 자신의 실수를 처리하기 위해 힘겹게 이불을 세탁하는 장면이나, 고통을 견디며 자신의 호흡과 싸우는 순간 등은 관객에게 장애나 임신이라는 사회적 규정보다, 그 순간을 살아내는 한 사람의 몸과 감각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때 영화는 성급하게 은진의 모습을 감정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녀의 몸짓과 호흡의 리듬에 살포시 동참해 그것을 함께 체험하도록 이끈다. 이 과정에서 ‘정상’이라는 사회적 기준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것인지가 드러난다. 


은진이 겪는 임신의 과정은 의학적 언어로는 때때로 ‘위험’이나 ‘비정상’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카메라가 따라가는 은진의 신체 리듬은 그러한 언어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조금 더 느리고 불균등하게 흐를 뿐, 그것은 여전히 한 사람이 겪어내는 유일한 삶의 리듬일 따름이다. 영화에서도 드러나듯이 ‘임신’이라는 똑같은 경험도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로 또 다른 이에게는 문제로 규정되는데, 그 차이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자면, ‘정상’이란 확고한 잣대가 아니라 언제든 맥락에 따라 달라지고 흔들리는 임시적 이름에 불과한 것으로 다가온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이미지4


이처럼 ‘정상’이라는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드러내는 순간, 영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질문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한 인간의 삶을 ‘정상성’의 획득이나 어떤 성취로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둘 사이에>는 바로 이 지점에서 흔히 장애 서사에 부여되곤 하는 ‘극복’과 ‘증명’의 틀을 거부한다. 영화는 오히려 제목처럼 ‘둘 사이에’ 놓인 경계 없는 공간, 즉 뚜렷하게 규정되지 않은 비규정의 지대 안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공간은 단순히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과 개인이 실제로 살아가는 경험 사이에서 생겨나는 틈이기도 하다. 영화는 바로 이 틈을 비추며 보이지 않게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적 시선과 규범의 무게를 드러낸다. 


은진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에세이 작가’라는 점은 이러한 비규정지대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은진은 자기 경험을 솔직하게 기록하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 어떻게 읽히고 해석될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글은 자기 고백이면서도 사회적 편견을 마주해야 하는 텍스트가 되고, 그 사이에서 은진은 늘 고민한다. 즉, 자기 목소리를 내고자 하지만, 언제나 타자의 시선이 개입된 자리에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이미지5


따라서 영화가 보여주는 비규정지대는 단순한 관계의 거리감이 아니라, 은진이 작가로서도, 한 여성으로서도 끊임없이 마주하는 자기 이야기와 타인의 해석 사이의 간극이다. 은진은 그 틈에서 흔들리고 고민하지만 바로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만의 내면적 리듬을 만들어 간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증명과 성취의 서사’를 넘어선 한 인간의 조용한 자기 서사화를 보여준다. 물론 그것은 겉으로 보기엔 ‘존재 자체를 드러내기’에 관한 성공과 실패 사이를 가늠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어떤 결과나 성취가 아니라, 그 중간 지대에서 은진이 자기 목소리를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 둘 사이에>는 확정된 해답을 내리거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함을 관객에게 넌지시 던지는 영화가 아니라, 여전히 흔들리고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어떻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지를 섬세하게 비추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규정되지 않은 인물들에 대하여. 이들의 흔들림은 불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흔들림을 통해 은진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고, 영화는 그 목소리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관객은 바로 그 과정을 목격하며, 존재란 본질적으로 완결되지 않고 언제나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이미지6


결국 <우리 둘 사이에>는 장애, 여성의 임신, 사회적 편견이라는 굵직한 주제를 단순히 드러내지 않고, 한 사람의 내면적 시간과 그 주변을 둘러싼 조용한 관계들을 통해 서서히 드러낸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결국 규정이나 성취가 아니라, ‘사이’에서 흔들리고 움직이며 조금씩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 가는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결코 확실한 해답을 주지 않으면서도 관객에게 오래 남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은진의 이야기는 곧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질문이 되고, 여성의 임신과 몸의 변화에 대한 질문이 되며, 자기 목소리를 내는 글쓰기에 관한 질문이 된다. 그 모든 질문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채 관객의 삶 속에서 다시 울려 퍼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둘 사이에>는 한 개인의 서사를 넘어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마주하는 그리고 우리 곁에 비가시적으로 놓인 ‘비규정의 지대’를 은유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