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애 (2024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 <하얀 차를 탄 여자> : 적대가 아닌 포섭으로 연결된 이야기 |
|---|
![]() <하얀 차를 탄 여자> : 적대가 아닌 포섭으로 연결된 이야기 장지애 2024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미스터리의 외형을 지닌 고혜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하얀 차를 탄 여자>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구조와 관계의 맥락 그리고 기억과 진술이 빚어내는 서사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중심 사건은 단순하다. 피투성이의 언니를 병원으로 데려온 인물 도경과 그를 조사하는 형사 현주가 있다. 관객은 이 둘의 진술과 시선, 그리고 중간에 개입하는 또 다른 존재를 통해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분명한 진실을 드러내기보다는 진실을 말하려는 혹은 기억해내려는 행위를 중심에 놓는다.
<하얀 차를 탄 여자>는 병원 응급실로 피투성이 언니를 데리고 온 동생 도경의 진술을 통해 시작된다. 수사 담당 형사 현주는 도경을 상대로 사건의 경위를 묻고, 영화는 그 진술의 내용을 따라가며 플롯을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도경의 진술은 일관되지 않고, 기억은 단속적이며, 감정은 억눌려 있다. 관객은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진실은 진술의 반복 속에서 점점 모호해진다. 여기에 또 다른 인물인 ‘은서’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은서는 사건의 직접적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도경과 언니 사이의 긴장을 촉발시킨 원인으로 암시되며 주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녀의 존재는 도경의 기억을 흔들고, 도경과 현주 사이의 수사적 긴장을 관계적 혼란으로 바꿔 놓는다. 사건의 본질은 점점 선명해지지 않고, 오히려 각 인물의 내면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중심축으로 대체된다. 영화는 언뜻 진술과 기억, 서사의 분열을 통해 ‘진실의 불확실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듯 보인다. 이는 고전적인 미스터리 장르의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읽히며, ‘하나의 진실’을 추적하기보다 ‘각자의 서사’를 병치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관객은 동일한 사건에 대한 엇갈린 진술과 편향된 기억을 따라가며, 그 안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왜곡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접근은 분명 영화적 실험으로서 일정한 미학적 야심을 담고 있지만 그 성취는 다소 미완의 형태로 남는다.
이야기의 불확실성은 관객에게 단순히 진실을 추리하게 만들기보다는, 진실을 말하는 자의 위치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영화의 초반부, 도경은 사건의 피해자인 동시에 이야기의 화자이며 진술의 권리를 가진 자다. 그러나 때때로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듯한 태도를 보이는 그녀의 기억은 분명하지 않다. 그녀는 끊임없이 말을 망설이며 진술을 수동적으로 내뱉는다. 그녀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쓰는 주체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요구에 따라 진실을 ‘재현’하고 있는 타자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에 관객은 도경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어떤 위치’에서 말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의심하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피해자와 수사자의 관계를 고정된 권력 구조로 보여주지 않는다. 형사 현주는 도경의 말에서 단서를 찾으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 또한 명확한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그녀는 사건의 실체보다 말의 양상에 주목하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도경의 진술을 ‘듣는’ 이라기보다 ‘해석하는’ 독자의 위치에 선다. 이 지점에서 두 인물의 관계는 사건을 둘러싼 단순한 수사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둘러싼 생산자와 수용자의 위치처럼 변모한다. 즉 도경은 이야기의 저자가 되려 하고, 현주는 그 이야기를 독해하려는 독자의 입장이 된다. 그러나 도경이 말하는 이야기는 스스로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자신의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며 현주는 그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채로 읽어 나간다. 이 비대칭적 관계는 문학에서 흔히 등장하는 서사자와 해석자의 관계처럼 읽힌다. 영화는 이 구조를 통해 진실을 추적하는 외형을 빌리되 실상은 이야기라는 구조물 자체의 탄생 조건을 탐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인물 ‘은서’가 개입하면서 기존의 이야기 구조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어쩌면 가장 미스테리한 인물인 은서는 도경과 현주 사이에서 이야기의 균형을 교란시키는 존재다. 그녀는 도경과 언니 사이의 관계에 감정적인 파장을 일으킨 인물로 암시되며, 이야기의 외곽에서 내부로 침투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은서가 도경의 기억 안에서 재구성되는 방식이다. 그녀의 모습은 특정 장면에서만 선명하고, 다른 순간들에서는 흐릿하거나 결여되어 있다. 이로써 은서는 사건의 서사에서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기보다, 이야기의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존재로 기능한다. 은서는 말하자면, 이야기의 틀을 낯설게 만드는 일종의 장치이기도 하다. 그녀의 존재는 고정된 관계의 구도를 전복시키며 이야기의 중심축을 흔든다. 도경과 현주가 이어가던 진술-해석의 관계는 은서의 개입 이후 그 자체가 불안정한 것으로 드러난다. 관객은 이 순간부터 단순한 사건 재구성의 구조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본질을 의식하게 된다. 은서는 이야기의 인물이 아니라, 이야기 바깥에서 그것을 구성하는 조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하얀 차를 탄 여자>는 기억의 파편, 진술의 불일치, 관계의 요동을 통해 단일한 진실을 구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히 ‘진실은 모호하다’는 선언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관심을 두는 것은 진실의 다성성이나 해석의 다양성이 아니라, 각 인물이 어떻게 자신의 고통을 ‘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는가 하는 문제다. 도경은 자신의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감정을 이해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려 한다. 이때 그녀의 진술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언어화하는 예술적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형사 현주의 입장 역시 단순히 정보를 추출하려는 위치를 넘어서 있다. 그녀는 도경의 말을 하나의 문장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단어의 배치, 맥락, 그리고 감정의 미세한 진동을 읽어내려 한다. 그녀는 이야기 속 인물인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대리하는 해석자다. 영화는 이 해석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보여주며, 하나의 이야기를 타인의 목소리로 읽는다는 것이 어떤 윤리적 감수성을 요구하는 일인지를 암시한다. 영화는 진실을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란 기억을 복원하거나 진실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개인의 고통을 감당하고, 타인과 감정을 교류하며, 과거를 새롭게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예술적 행위’로 기능한다. 도경은 말함으로써 자신을 구성하고, 현주는 그 말을 읽으며 관계를 맺는다. 이 과정을 통해 관객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 이후의 ‘말해지는 고통’과 ‘해석되는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 서사 구조가 항상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고혜진 감독이 설정한 관계의 구조는 흥미롭고 정교하지만 감정의 밀도와 극적 긴장을 꾸준히 유지하지는 못한다. 도경의 진술은 반복되며 점차 관객의 감정적 몰입을 약화시키고, 현주와의 관계 역시 단절된 감정선 위에서 맴도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은서라는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을 전복하는 열쇠로 등장하지만, 그 인물 자체가 지닌 서사적 무게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리된다. 이로 인해 이야기의 균열이 충분한 정서적 파장을 일으키지 못하고, 관계의 재편이 서사의 고리로 완전히 작동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영화의 야심은 분명하다. 고혜진 감독은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각 인물의 심리와 기억, 말의 방식이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려 한다. 이는 이야기의 구성이 아니라, 이야기를 말하는 ‘방식’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관계’에 주목하는 시도다. 그러나 그 실험이 끝내 정서적 공명을 확보하지 못한 채 형식적 장치로만 남게 될 때, 영화는 감정보다는 구조에 갇히게 된다. 그럼에도 <하얀 차를 탄 여자>는 첫 장편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고 있다. 기억을 말하고 고통을 진술하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해 묻는 이 영화는 미스터리의 외형 속에 예술적, 윤리적 질문을 은밀히 숨기고 있다.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읽게 되는 것은 결국 하나의 범죄가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고통, 이해받고 싶은 기억, 그리고 이야기로 다시 살아나고자 하는 욕망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