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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윤 평론가

<만약에 우리> - 사랑이라는 자연재해
영화 <만약에 우리> 포스터 이미지



<만약에 우리> - 사랑이라는 자연재해


이동윤 (부산영화평론가협회)


  태풍이 오고 있고, 흑백 화면은 비가 내려 촉촉히 젖어있다. 하노이 현지 택시 기사가 묻는다. “이번 태풍 이름이 캐슬린이에요. 태풍 이름을 왜 예쁘게 짓는 줄 아시나요?” 시큰둥한 은호(구교환)와 정원(문가영). “피해주지 않고 잘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래요. 하지만 태풍은 모든 걸 쓸어버리죠.” 이 오프닝 시퀀스는 의미심장하다. 이름은 곱지만 결국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마는 태풍처럼, 두 사람의 사랑 또한 ‘만약에’라는 애틋한 가정법과 달리 현실의 폭우 앞에서 속절없이 쓸려나갔기 때문이다. 모던의 감각이 화면의 직관을 유도하지만, 영화 초반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두 사람의 오묘한 시선처리다. 그렇게 마주한 인연은 16년이라는 시계태엽이 다시금 천천히 추동하며 활동하기 시작한다. 


  태풍이 묶어둔 하노이의 밤은 시계가 멈춘 진공 상태다. 반면 그들이 통과해온 10여 년의 세월은 격렬한 유속을 지닌 급류였다. 영화는 하룻밤이라는 정지된 점 위에, 영화는 그간 각자가 버텨 온 10년 선을 꽂아 내린다. 흑백의 현재의 밀도가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호텔과 강가를 오가는 그 짧은 동선 속에 방황과 이별, 재회라는 거대한 시간의 부피가 빽빽하게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컷 이미지


  잘 알려져 있듯 <만약에 우리>(2025)는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2018)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리메이크 영화의 특성상 핵심 개념과 장면을 고스란히 계승하지만 두 영화가 대척되는 지점은 현재의 기상상태다. 원작이 폭설로 비행기가 연착되는 반면 리메이크작은 태풍으로 발이 묶인다. 눈(雪)의 물성을 지닌 원작과 비(雨)의 물성을 지닌 리메이크작. 두 기상 현상 모두 가난과 권태라는 앙상한 현실을 가두는 감옥이다. 다만 그 감각의 결은 차이가 있다. 원작의 눈이 세상의 비루함을 하얗게 덮어 잠시나마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는 고립을 보여줬다면, 리메이크작은 피할 곳 없는 단칸방의 눅눅함을 뼛속까지 스며 침투를 형상한다. 눈은 쌓여서 움직임을 막고, 비는 흐르면서 체온을 뺏는다. 


  하지만 결국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 이 전제는 불변한다. 그렇기에 곧 영화 후반, 두 사람의 이별 시퀀스가 떠오른다. 정원이 이별을 결심한 순간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원이 은호를 놓아버린 건 단지 가난 때문이 아니었다. 좁은 방 안, 은호는 게임 개발이라는 미래를 짓는 대신, 당장의 게임 플레이라는 도피처에 빠져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모니터 속으로 침잠하는 그의 등을 보았을 때, 정원은 직감했다. 정원은 그 짧은 시간, 빗속에서 현실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냈고, 은호는 가상의 우산 아래 숨었다. 비는 두 사람에게 공평하게 내렸지만, 그 비를 견디는 방식의 차이가 결국 이별이라는 도착지를 부른 것이다. 


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컷 이미지2


  김도영 감독은 장르적 숙명을 숨기지 않는다. 과거는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현재는 흑백으로 죽어있다. 이 노골적인 색채 대비는 두 사람의 사랑이 이미 종료된 사건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영화는 그 어긋남의 기원을 찾아 서울의 좁은 자취방으로 시간을 되감는다. 가장 행복했던 한때, 은호와 정원은 그 좁은 방에서 등을 맞대고 각자의 꿈을 꾼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구축하려는 세계의 물성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은호는 게임 개발자다. 그는 0과 1이라는 비물질적인 코드를 쌓아 가상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곳은 중력이 없는 세계다. 실패하면 다시 시작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고, 원한다면 하늘을 날 수도 있다. 은호에게 세상은 공략해야 할 스테이지이며, 빨리 레벨을 올려 성공이라는 엔딩을 보면 되는 곳이다. 반면 정원은 건축을 공부한다. 그녀는 흙과 콘크리트라는 무거운 재료를 다룬다. 건축은 중력을 견디는 기술이다. 기초가 부실하면 무너지고, 한 번 잘못 쌓은 벽은 되돌릴 수 없다. 정원에게 세상은 공략 대상이 아니라, 매일의 밥과 잠, 온기라는 기초공사를 통해 천천히 다져가야 하는 지반이다. 은호가 모니터 속에서 화려한 그래픽으로 성을 쌓을 때, 정원은 스티로폼과 본드로 현실의 모형을 힘겹게 붙인다. 하나는 너무 가볍고, 하나는 너무 무겁다. 이 무게의 시차(時差)가 결국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컷 이미지3

  

  사실 <만약에 우리>는 멜로드라마의 익숙한 설정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가난 때문에 헤어진 연인, 성공한 남자의 뒤늦은 후회,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도착하는 편지까지.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이 낡은 도구들을 구원하는 것은 오로지 두 배우, 구교환과 문가영이 뿜어내는 육체의 밀도다. 구교환은 성공에 눈이 먼 속물적인 남자가 아니라,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아는 유일한 방법인 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절박함을 온몸으로 전시한다. 개인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더 놀라웠던 지점이 문가영의 연기다. 정원은 울부짖는 대신 텅 빈 눈동자로 상대를 응시한다. 그 눈빛에는 체념과 연민,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사랑의 잔재가 뒤섞여 있다. 정원이 은호의 손을 놓는 순간, 우리는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을 감지한다. 그것은 단순히 연인과의 이별이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세계, 즉 두 사람이 함께 지으려 했던 집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허무의 시선이다. 


  영화의 엔딩,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간다. 그들은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라는 집을 완공하는 데 실패했다. 은호는 가상 세계로, 정원은 현실 세계로 나아간다. 다만 미완 된 현재는 은호 아버지의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과거의 잔재된 감정을 현재의 자리로 소환한다. 서로의 기억 속에 지어진 그 방은 어떤 물리적인 집보다 견고하다. 은호와 정원은 그 당시에 각자의 답을 찾지 못해 헤어졌지만, 그들이 흘린 눈물과 사력을 다해 부딪혔던 육체의 기억만이 두 세계를 잇는 유일한 접착제가 되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든다. 지어지지 못했기에, 결코 무너지지도 않을 집. 그것이 태풍 캐슬린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두 사람의 우연과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