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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애 (2024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보이> : 네온의 파동이 만든 정체성의 허상
영화 <보이> 스틸컷 이미지



<보이> : 네온의 파동이 만든 정체성의 허상 


장지애 2024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이상덕 감독의 영화 <보이>는 현재 한국 독립영화 지형 속에서 시청각적 상상력을 한층 확장시키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특정한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기보다는, 장르 자체를 하나의 언어로 전유하며 감정, 정체성, 기억, 그리고 존재의 형식을 새롭게 재구성한다. 특히 이 작품이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스페인 판씨네(FANCINE) 영화제에서 ‘네온-느와르(Neon-noir)’로 명명되었다는 사실은, <보이>가 기존 장르 구분의 틀 안에 수렴되기보다는 그 경계를 감각적으로 재배치하려는 시도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여기서 ‘네온-느와르’라는 명칭 자체는 장르적 분류가 아닌 미학적 제안이자 감정적 위치를 지시하는 설명어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그것은 고전 느와르(Noir)의 도덕적 세계관이 해체된 자리에 빛의 기호와 감정의 파편들이 대신 자리하는 새로운 감각 구조를 의미한다. <보이>는 이 지점에서 고전 느와르의 숙명론과 자기파괴적 주체성, 그리고 네오 느와르(Neo-noir)의 정체성 해체와 도덕적 모호성을 계승하면서, 빛과 공간, 그리고 정서의 조형 방식에 있어서 급진적 전환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네온은 스타일의 문제라기보다는 감정의 언어이자 존재의 구조 자체를 구성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따라서 ‘네온-느와르’란 범박하게 시각적 요소가 감정의 통로가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보이> 속 네온 조명은 심리적 공간이자 내면의 파편을 외화하는 장치다. 전통적인 느와르가 어두운 골목, 사립 탐정, 범죄와 숙명이라는 요소를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둠을 서사화했다면, <보이>는 더 이상 ‘어둠’ 속에서 감정이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빛’의 과잉 속에서 감정이 파편화되고 흐릿해지는 상황을 제시한다. 즉, 빛은 존재를 명확히 비추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정체성을 중첩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보이>는 이처럼 감정과 빛의 파편 속에서 정체성을 재구성하지만, 그 감각의 지층은 결코 순수한 미학적 추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인 포구시는 법과 제도가 더 이상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는, 일종의 통치의 공백 상태이며, 이곳에 정착한 인물들은 국가가 규정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주체 범주 바깥으로 이탈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사회적 계약의 언어로는 더 이상 호명될 수 없는 존재들, 다시 말해 ‘시민’도 ‘범죄자’도 아닌 채 어떤 공식적 체계로도 포섭되지 못한 비가시적 잉여들이다. 그러나 이 ‘잉여성’은 단일하지 않다. 오히려 포구시 내부에서조차 또 다른 분할과 배제가 작동하며, 이로써 존재의 위계는 다시 한 번 재편된다. 


영화 <보이> 스틸컷 이미지2


이러한 조건은 포구시 내부의 주요 무대인 ‘텍사스 온천’이라는 시설에 가장 선명히 구현된다. 텍사스 온천은 외형상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동체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입장과 이동이 통제된 위계적 구조를 갖는다. 내부에는 일부 인물만이 티켓을 통해 진입할 수 있는 이중의 공간이 존재하며, 이 공간의 용도와 질서,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활동은 끝내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이 설정은 포구시 자체가 하나의 폐쇄적 생존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하며, 공간 내부에서조차 다시 배제의 논리가 작동한다는 점에서, 감정과 정체성의 문제를 보다 심화된 사회적 층위로 확장시킨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영화가 이 이중의 공간 구조—즉 온천의 외부, 내부, 그리고 그 내부의 또 다른 구획—를 시각적으로나 서사적으로 자세히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전략은 단순한 생략이나 미장센의 제약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영화의 핵심 감각인 정체성의 부재와 경계의 불확실성을 공간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형식적 사유에 가깝다. 공간은 보여지지 않음으로써, 인물들이 통과하는 감정의 밀도를 더 증폭시키며, 무엇보다도 관객이 그 경계에 대해 완전히 인식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는 곧 정체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투명한 공간에 기반하고 있다는 은유적 구성이다.


영화 <보이> 스틸컷 이미지3


그런 의미에서 ‘텍사스 온천’은 사유 가능한 공간이 아니라 체험 가능한 구조로 존재한다. 그것은 인물들이 감정과 관계를 구축하는 유일한 장이자, 동시에 그 어떤 안정적인 서사도 허용하지 않는 불완전한 밀실이다. 영화가 이 공간을 거의 떠나지 않고, 그 외부를 서사적으로 탐색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포구시는 경계가 없는 곳이 아니라, 경계가 감지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곳이며, <보이>는 그 안에서 형성되는 감정의 파동만을 따라간다. 바깥이 없음으로써 내부는 더욱 폐쇄되며, 이 폐쇄성은 인물들의 정체성이 형성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파편화되는 조건과 밀접히 연결된다. 


텍사스 온천의 공간적 폐쇄성과 이중적 위계는, 거기에 속한 인물들의 감정 구조를 결정적으로 형성한다. 여기서 인물들은 안정된 관계망 속에 위치하지 않으며, 고정된 역할을 수행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불확실한 애착과 누적된 불신, 그리고 말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감정적 긴장 속에서 관계를 유지한다. 이 긴장은 대개 폭력이라는 형식을 통해 발현되지만,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지배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 혹은 관계의 서사적 책임이 부재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존재 간의 마찰로 이해되어야 한다. 


영화 <보이> 스틸컷 이미지4


이곳에서 폭력은 행위이기 이전에 감정의 언어다. 로한은 지배자로 보이지만, 그의 폭력은 질서를 유지하려는 통제보다는 자신과 세계 사이의 불균형을 임시로 봉합하려는 감정적 반응에 가깝다. 교한과의 관계 역시 권력 구조로 정리되지 않는다. 형제라는 명목은 있지만, 그 관계의 내력은 흐릿하고, 두 사람 사이엔 지워진 과거와 암묵적인 책임의 누적이 만들어낸 감정의 균열만이 남는다. 이 균열은 텍사스 온천이라는 물리적·정서적 밀실 안에서 점점 더 팽창하며, 구체적인 언어나 갈등으로 해소되지 못한 채 침묵과 응시, 또는 돌발적인 폭력의 형태로만 나타난다. 


이러한 정서의 응축된 구조 속에 외부에서 도착한 인물 ‘제인’의 등장은 단순한 사건의 촉발이 아니라, 공간 내부의 감정적 배열 자체를 교란시키는 파동으로 작용한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진입자이지만, 이 시스템 내에서 배제되거나 흡수되는 방식 모두를 거부한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감정적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인물들은 자신이 정주해 있던 관계의 위치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사건이나 플롯을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인과가 아니라 감정의 중첩과 파열, 그리고 그것이 공간 안에 남기는 분위기의 전이로만 측정된다. 


영화 <보이> 스틸컷 이미지5


텍사스 온천이라는 공간은 이런 면에서 인물들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감정의 무게가 공간의 물리적 조건과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장이다. 감정은 특정 인물의 심리 내면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장소의 구조, 빛의 기울기, 시선의 밀도, 그리고 타인과의 거리 속에서 구현된다. 그러므로 인물 간의 충돌은 단순한 관계 갈등이 아니라, 이 장소에서 ‘함께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합의 불가능성에서 기인한다. 갈등은 상대를 파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감정이 어디에 어떻게 놓여야 하는지를 서로 다르게 감지할 때 발생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이>는 서사 중심적 영화에서 흔히 기대되는 심리적 동기, 관계의 기승전결, 정체성의 회복 같은 장치들을 철저히 해체하고, 그 자리를 파편화된 감정과 비가시적인 긴장, 네온빛의 감각적 파동으로 채운다. 이 감각은 구체적인 말이나 서사로 환원될 수 없기에, 인물들은 결국 그들 자신으로 완결되지 못한다. 하지만 바로 그 불완결성과 잉여성 속에서 <보이>는 하나의 새로운 감정 정치학을 선취한다. 그것은 존재가 더 이상 제도로 호명되지 않고, 감정이 더 이상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미결정성의 윤리와 미학이 작동하는 세계다. 


이렇게 볼 때 ‘네온-느와르’라는 수식은 단지 미장센의 장르적 변형이 아니라, 빛이 존재를 불안정하게 떠돌게 만드는 감정의 질감을 가리킨다. 네온의 파동은 인물과 공간, 감정과 기억,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의 감각까지 동시에 진동시킨다. 그리고 그 파동이 지나간 자리에는 완결된 서사도 고정된 주체도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오직 빛의 잔향처럼 스쳐 지나간 감정의 흔적들, 말로는 다 붙잡을 수 없는 어떤 감각의 여운일 뿐이다. 


영화 <보이> 스틸컷 이미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