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윤 평론가
| <관념의 남자 김철수> - 역방향의 미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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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념의 남자 김철수> - 역방향의 미덕 이동윤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아침 7시 기상, 콩나물국, 정해진 시간의 배변. 차시윤, 이재리 감독의 <관념의 남자 김철수>는 시작부터 주인공의 하루를 답안지 밀어 쓰듯 빽빽하게 채워 넣는다. “복도에서 선생님을 만났을 때 적절한 행동”을 묻는 학생에게 “교과서에 없으니까”라고 내놓은 철수의 궁색한 대답 이후, 카메라는 그 학생의 당돌한 표정을 철수의 시점 숏으로 응시한다. 이 생경한 미소는 견고했던 철수의 회로에 질문을 남기고, 영화는 그 해답을 향해 조금씩 발걸음을 옮긴다. 정답만 쫓던 남자가 세미에게 차이고 궤도 밖으로 밀려난다. “우주라도 여행을 가야 하나요?”라는 물음에 “고정관념을 부숴라”라는 말과 함께 즉흥적인 처방을 내리는 의사. 이에 철수는 연고도 없이 성남으로 무작정 기어들어 가는데, 여기서 이 남자의 기묘한 슬랩스틱이 시작된다. 우연히 거기서 어릴 적 친구 영희를 만나고 길 잃은 개에게 바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다분히 교과서적이고 평면적인 일상들이 슬랩스틱과 함께 경유한다. 영화는 횡축으로 이동하는 인물들의 추적 동선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데, 예컨대 경비원 아저씨를 피해 도망친다거나, 영희가 놀이터에서 네발로 기어다나는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이는 마치 채플린의 영화처럼 톱니바퀴 사이를 뒹굴며 온몸으로 시대를 거스르는 몸짓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수의 작위적 일탈은 거창한 자아 찾기의 여정이라기보다 그저 시스템의 룰을 몸으로 튕겨내려다 스텝이 꼬여버린 오작동에 가깝다.
그렇기에 영화 내내 스크린에 불쑥 끼워 넣는 6mm 카메라 숏의 거친 질감은 바로 그 오작동의 기원을 끈질기게 묻는 장치로 보인다. 자글자글한 노이즈가 낀 낡은 마그네틱 테이프의 화면 속 과거. 그것은 철수가 평생을 갇혀 살았던 '착한 아이'라는 정답의 감옥이자, 그의 동선을 철저히 통제해 온 보이지 않는 규율의 억압적인 물성을 표현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 저해상도의 과거가 현재의 철수를 지배하고 압박하는 방식에 있다. 6mm 카메라는 이미 기록이 끝나버린, 더 이상의 덮어쓰기나 수정이 불가능한 닫힌 매체다. 현재의 작위적이고 엉뚱한 일탈의 몸짓과 꼼짝없이 박제된 과거의 화면이 거듭 교차할 때, 우리는 이 남자를 옭아매고 있는 1번이라는 정답의 껍질이 대체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 반복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 덜컹거리는 여정이 도달하는 가장 기묘한 순간은 영희, 바둑이와 어두운 공원을 누비는 후반부다. 돌연 시간이 느려지고 철수가 정방향을 거슬러 뒤로 걷고 뛰기 시작한다. 아마도 여기서 영화가 취하는 채플린적인 슬랩스틱은 어떤 극점에 달하는 것 같다. 뒤로 걷는다는 건 끝없이 쏟아지는 시간의 유속을 버텨내는 행위로서 기록된다. 평생 동안 정답이라는 목적지만 보고 직진하던 남자가 처음으로 시야를 뒤집어 깐 채 비틀거리며 풍경을 낯설게 역주행하는 이 기묘하고도 느릿한 뜀박질. 앞으로 가려는 세계의 당연한 관성을 온몸으로 거부하다 못해 결국 제 풀에 우스꽝스럽게 엉켜버리는 이 지연된 시간 속에서, 철수는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매달렸던 꽉 막힌 텍스트의 세계와 조용히 작별할 틈 하나를 간신히 얻어내고 있는 것일까. 세미와 완전히 끝이 나고 다시 홀로 남겨진 철수. 곁에는 바둑이뿐이다. 낡은 6mm 테이프가 마침내 다 돌아가 버린 것처럼, 강박적인 과거의 시선은 더 이상 철수를 찌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사내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다. 그저 제 손으로 삶에 기어이 오답을 기입해 보며 흙먼지를 뒤집어쓴 철수의 ‘관념’이 이전과는 미세하게 달라진 보폭으로 또 다른 일상을 터덜터덜 걷기 시작할 따름이다. 무엇 하나 명확하게 회수되지 않은 채, 1시간 남짓의 실없는 농담과 무수한 엇박자들이 긁어낸 덜컹거리는 뉘앙스들은 나름대로의 감흥과 미덕을 갖춘 채 끝이 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