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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호(2025 영화비평 공모 수상자)

지금만이 의미 있는 세계: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이미지



지금만이 의미 있는 세계: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장승호(2025 영화비평 공모 수상자)


영화가 시작한 지 5분 정도가 지날 즈음, 김초엽의 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읽은 관객이라면 원작과 무언가 달라졌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는 독자와 청자의 위치에 있던 소피가 이미지의 중심을 점유하는 발화자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김초엽의 원작 소설은 지구로 떠난 데이지가 소피에게 남긴 한 편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흥미로운 건 이 서간체 소설에서 편지가 몇 차례에 걸쳐 반복된다는 것이다. 먼저 소피가 데이지의 편지를 발견한다. 그 편지 속 데이지는 순례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금서 구역에 들어갔다가 올리브가 남긴 기록을 듣게 된다. 그 기록 속에서 올리브는 릴리와 마을의 기원을 찾던 중 시초지 박물관에서 릴리의 연구 일지를 훔쳐낸다. 소피가 데이지를, 데이지가 올리브를, 올리브가 릴리를 뒤쫓는 형식으로 짜인 이 소설의 동인은 모두 어떤 호기심에 기반한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그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지’, ‘데이지는 어디로 갔는지’ 말이다. 천천히 벗겨지는 베일과 거기서 유출되는 비밀을 발견하는 탐정 소설적 즐거움이 이 소설의 첫 번째 매력이다.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이미지2


물론 원작의 매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중 드러나는 비밀이란 단순히 그것이 누설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는 유희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마을에 거주하는 릴리의 후손들과 관련된 출생의 기원이자, 그것이 릴리라는 유전자 해커에 의해 자행된 어떤 테크니시즘의 산물이라는 것, 그 이데올로기가 자신의 유전적 결함에 대한 자기혐오에서 기인했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된 파시즘적 박해를 비개조인, 달리 말하면 자연적 시초지인들이 떠안고 있다는 진실을 폭로하는 창으로 기능한다. 그렇게 어버이의 원죄의 증거인 시초지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윤리적 교착 상태에 빠진다. 마을로 돌아가 순례를 마치는 행위는 릴리가 본인 스스로와 자녀들만을 데리고 외계 행성을 찾아 떠났던 이기적 탈출을 반복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이 교착을 깰 가능성이 하나 떠오른다. 사랑의 발견이다. 릴리의 유전자에 기반한 마을인들은 서로에게 성애적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시초지인들은 최초의 타자이므로 성애적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즉, 순례자들은 순례지에서 고통받는 타자의 얼굴과 앞으로 사랑하게 될 타자의 얼굴을 동시에 만난다. 그리고 여기서 귀환을 거부하는 순간, 그것은 타자가 대면하고 있는 세계에 함께 맞서겠다는 다짐을 세우는 일이며 그 결심이 사랑을 발명한다.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이미지3


허평강은 원작에서 서사의 매력을 운반하는 독자이자 청자였던 소피를 주체의 자리로 복권시킨다. 그로써 작품의 정념은 앞서 상술한 고고학적 탐사에서 이탈한다. 원작에서 올리브가 릴리를, 데이지가 올리브를, 소피가 데이지의 흔적을 발견하는 식의 사후적 발굴이 서사의 줄기를 지탱했다면, 영화는 소피와 데이지에게 원격 통신 장비를 제공해 먼 거리에서도 서로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하며 연속으로 이어 붙여진 교차 편집된 이미지들은 마치 이를 달성코자 하는 노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소설이 사후성의 문제라면 영화는 동시성의 문제다. 그런데 어째서 영화는 원작의 말끔한 발굴 작업에서 빠져나와 동시성에 뛰어든 것일까.


이에 관해 좀 더 논하려면 영화 내내 두드러지는 소피의 물리적 현존을 다룰 수밖에 없을 듯하다. 영화 속 소피의 외모는 일본 애니메이션 여성 캐릭터의 전형적인 외양에서 어딘가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부드러운 표정과 눈매는 재패니메이션의 작화를 떠올리게 만들지만, 타원형으로 길게 뻗은 얼굴 탓에 하관이 강조되는 얼굴의 여백은 관객을 멈칫거리게 만든다. 작품이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재패니메이션의 근간은 미형 디자인에 있기 때문이다. 왓챠피디아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리뷰가 “그 소피 턱 길이 좀..”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실제로 다수의 관객이 공유하는 반응인 듯하다. 특히 극 중 미성년자인 소피는 주변 성인에 비해 절반 정도 더 긴 얼굴을 갖고 있지만 키는 그보다 작다. 통계적 규준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소피의 신체 비율과 외양은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을 기대하고 있는 관객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극이 진행됨에 따라 등장하는 핵심 인물인 데이지, 올리브, 델피가 모두 미형임을 알아차리게 됐을 때 이 당혹감은 극에 달한다. 전형적인 미형으로 그려진 데이지는 외모가 흉측하다며 구박을 받지만, 반-미형으로 디자인된 소피에 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소피가 살고 있는 세계는 외양에 대한 평가절하를 경험할 일이 없는 작은 낙원이기 때문이다.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이미지4


데이지의 편지로 구성된 소설의 결말부에서 편지를 다 읽은 소피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아마 독자의 상상에 달렸을 터인데, 소설에서 소피는 독자의 위치에 있으므로 독자가 소피를 상상하는 일은 독자가 그 스스로의 행위를 예측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소설은 그 끝에서 미래에 대한 잠재성을 독자에게 맡기는 형국이다. 반면 영화에서 소피는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행위자에 가깝다. 그는 금서 구역에 잠입해 마을의 비밀을 알아내고 시초지에 도착하면 거센 혐오가 있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돌아오지 않을 순례를 떠난다. 영화 내내 다른 인물들과 구별되어 장면화되는 소피의 외양을 알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시초지로 떠나는 소피가 겪게 될 장면들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기에 소피의 결심이 여느 순례자들의 여정과는 다른 차원임을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피에게 있어 그런 위험 감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왜냐면 그에게 있어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데이지가 그립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피에게 사랑은 사후적으로 발명해야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 있던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며 지극히 현재의 문제다. 달리 말하면, 예정된 고통도 발명될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 요동치는 사랑뿐이다. 사랑은 이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