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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HOPE' - 대체 뭐가 중요해요
영화 <호프> 포스터 이미지



'HOPE' - 대체 뭐가 중요해요


이동윤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나홍진의 신작 'HOPE'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저렇게 쑥대밭이 된 마을에 왜 사람이 없느냐는 것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끝까지 범석(황정민)의 동선만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그러나 그의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은 하나의 삶을 살아온 주민이라기보다, 범석의 다음 행동을 위해 배치된 기능적 장치에 가깝다. 누군가는 길을 알려주고, 누군가는 총을 건네며, 누군가는 괴물에게 희생된다. 그들의 일상도 두려움도 살아남으려는 욕망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를 미뤄볼 때 호포항은 사람이 사는 마을이 아니라 이미 플레이어의 진입을 기다리는 게임 맵처럼 비어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이 거대한 농담은 묘한 기시감을 남긴다. 1970년대 비무장지대 인근의 고립된 어촌과 우주적 존재라는 거대한 설정을 불러왔지만, 스크린 위에서 반복되는 감각은 낯설기보다 익숙하다. 폐허가 된 마을의 풍경은 유명 슈팅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한국맵 '태이고(Taego)'를 떠올리게 하고, 인물들의 행동 원리 역시 단순하다. ‘적이 나타나면 쏜다 > 길이 막히면 돌파한다 > 다음 목표를 향해 이동한다’. 영화를 움직이는 것은 인물의 선택이 아니라 퀘스트의 갱신이다. 거대한 서사를 예고했던 세계는 어느새 3인칭 슈팅게임(TPS)의 알고리즘으로 환원되고, 서사의 빈자리는 폭발과 총성, 거대한 물성으로 메워진다. 물론 이 안타까운 폭주를 지켜보다 보면 차라리 관념의 덫이라도 파놓았던 전작들이 그리워질 정도다.


영화 <호프> 스틸컷 이미지


미디어 학자 알렉산더 갤러웨이(Alexander Galloway)는 ‘게임은 행위다’라는 명제를 통해 이미지를 보는 영화와 행동을 실행하는 게임의 매체적 차이를 설명한 바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HOPE'의 구조는 의외로 선명해진다. 영화 속 인물들은 공포를 느끼고 번민하며 세계를 경험하는 주체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입력을 대신 수행하는 3인칭 게임의 아바타처럼 기능한다. 삶의 맥락이나 내면의 흔들림은 삭제되고, 이동과 엄폐, 조준과 발사 같은 실행만 남는다. 행동은 더 이상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감정을 대체하는 알고리즘이 된다. 인물들은 왜 달려야 하는지 스스로 묻지 않는다. 그저 다음 목표를 향해 전진할 뿐이다.


본래 영화는 3인칭 매체라 해도 관객은 인물의 얼굴과 몸, 시선과 망설임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1인칭 경험을 공유한다. 시점 숏(POV)은 그 경험을 극단적으로 가시화하는 장치에 가깝다. 그러나 'HOPE'에서 드물게 등장하는 1인칭 시점은 인물의 의식 안으로 관객을 들여보내지 않는다. 이 제3자적 경험은 공포를 체험하게 하기보다 충격을 전달하기 위한 촉각적 효과에 머문다. 마치 게임에서 조이패드의 진동이 피격의 감각만을 전달하듯 시점은 내면을 드러내는 창이 아니라 물리적 타격을 객석에 증폭시키는 인터페이스로 소비된다. 인물의 경험이 이처럼 끝내 행위로 환원되면서, 영화의 서사 역시 삶의 연속이라기보다 미션의 연쇄를 닮아가기 시작한다.


'HOPE'에서 소위 네러티브라는 것은 인과를 형성하는 장치가 아니라 액션 시퀀스를 연결하는 최소한의 접착에 불과하다. 각각의 장면은 앞선 장면의 결과라기보다 다음 스펙터클을 호출하기 위한 발판처럼 기능한다. 인물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운명을 바꾸는 존재가 아니라, 갱신되는 목표를 수행하며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는 아바타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왜'가 아니라 '다음'이다. 다음 적, 다음 공간, 다음 전투. 그 반복이 영화의 리듬을 대신한다.


영화의 길 잃은 상태는 범석의 입을 통해 노골적으로 튀어나온다. "일단 달려." 그 다음은? 자신도 머리 속이 정리가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출장소장과 마을 사람들은 최소한의 공포만 남긴 채 무작정 괴물을 향해 쇄도한다. 상식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파국 앞에서도 이들은 마치 프로그래밍된 특수부대 요원들처럼 망설임 없이 돌진한다. 왜 달리는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눈앞에 과녁이 떴기 때문이다. 성애가 느닷없이 M16 소총을 쥐고 나타나는 장면은 이 텅 빈 세계관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총이 도대체 어디서 났느냐는 범석의 빤한 질문에 NPC 처럼 등장한, 나이 든 어르신들은 단칼에 말한다. "그게 지금 뭐가 중요하냐." 그렇다. 이 영화는 애초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영화 <호프> 스틸컷 이미지2


물론 개연성이나 논리의 규범적 연결의 없음, 또는 미진함을 구태여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그렇게 서사를 덜어낸 자리를 채워야 할 운동성마저 끝내 설득력을 획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함선 발견 이후 숲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일련의 액션 시퀀스는 그 결함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불쑥 튀어나온 외계인은 사람을 쫓고, 피격된 육체는 슬로 모션 속에서 허공으로 날아간다. 같은 충돌과 같은 타격이 쉼 없이 반복된다. 인물들은 난장판 한복판으로 떠밀리듯 이동하고, 카메라는 그 소동을 뒤쫓느라 공간의 방향감각마저 잃는다. 흙먼지가 시야를 뒤덮고 기괴한 살점이 화면을 메운다. 


모든 것이 시끄럽고 거대하지만 물성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 숲 시퀀스에서 외계인이 어디서 나타나는지, 인물은 어디서부터 어디로 도망치는지 동선이 그려지는가? 누가 누구를 어디까지 몰아붙이고 있는지, 어떤 움직임이 다음 움직임을 필연적으로 호출하는지, 타격이 어떻게 리액션으로 이어지는지와 같은 액션의 기본적인 물리적 논리가 끝내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HOPE'가 전시하는 것은 액션이 아니라 스펙터클에 불과하다. 재론의 여지가 없다. 화면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부수고, 호출하고, 폭발시키지만 그 파괴는 긴장을 축적하거나 해소하지 못한 채 시각적 자극으로 흩어진다.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했으면 적어도 관객의 몸을 설득할 만큼의 운동성만큼은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HOPE'는 그 최소한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다. 


아마 나홍진이 'HOPE'를 통해 남기고 싶었던 것은 무한히 팽창하는 쾌감 이면에 도사린 거대한 공백, 거기서 피어나는 괴상한 유머였을 것이다. 나는 그가 질주하는 카메라와 박살 나는 피사체에 대한 그 육체적인 추동을 꿈꾸며 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감각의 전시장은 최소한의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 채, 영화 속 함선처럼 추락해버리고 만다. 화가 나지도 않고 안타까웠다, 라고 말하면 아마 감독은 이럴 것이다. “그런게 뭐가 중요해요?”. 그럼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럼 대체 뭐가 중요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