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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호의 리마인드

<트라스-우스-몽트스> : 돌과 바람과 연기의 땅
영화 <트라스-우스-몽트스> 스틸컷 이미지


<트라스-우스-몽트스> : 돌과 바람과 연기의 땅 


박인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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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에는 오래전부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감독들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독창적인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20세기를 가로지르고 21세기를 살아낸 전설적인 존재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괴상하지만 유머러스한 태도로 세계와 영화에 대해 근심하고 때론 우리를 음험한 상상력으로 인도했던 주앙 세자르 몬테이루, 민족지학적인 토대 위에서 포르투갈 사람들의 일상과 지리적 환경을 시간에 마모되어 가는 존재로 바라본 안토니우 헤이스와 마르가리다 코르데이루, ‘시네마 노부’의 대표적 인물이자 청년영화다운 새로운 출발을 알렸던 파올루 호샤가 그들이다. 카보베르데에서 폰타이냐스로 이어지는 포르투갈의 역사와 개인의 영락한 삶을 비추는 가느다란 빛을 카메라에 담은 페드로 코스타와 정체성의 변모에 대해 집요한 탐구를 이어가며 영화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 영화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람들의 활력을 체험하는 영화를 통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미겔 고메스도 현재 포르투갈이 처한 상황과 영화가 존재하는 토대와 형식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며 영화를 만든다.  

   포르투갈 영화의 저력과 독자성은 포르투갈이 유럽대륙의 변방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요건과 그로 인해 파생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요소와 관련이 있다. 대륙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은 북동쪽으로 갈수록 산악지대와 고원지대를 이룬다. 또한 유럽대륙이 비슷한 시기에 성취한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은 채 느린 속도로 자기만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땅이기도 하다. 그들은 역사와 신화에 축적된 시간, 종교적 관습과 의례, 자율적으로 이어져 온 원시적 공동체와 지역 방언이 저장된 곳에서 그들만의 풍성함과 강인함을 지닌 채 노동을 영위했다.   

   독자적인 하나의 세계라 여겨지는 포르투갈이지만, 그들의 현대사가 순탄하지만 않았다. 살라자르 정권이 ‘신국가’를 표방하며 가톨릭, 파두, 축구를 내세워 국민들을 무지와 순응으로 억압하고 지식인을 탄압하며 식민지 전쟁을 이어갈 동안 포르투갈은 침체를 거듭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 40여 년간 이어지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서야 포르투갈의 민주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오랜 농경 문화 전통과 뒤늦게 도래한 산업화가 충돌하며 북동부처럼 외진 지역은 자생력을 잃었고, 식민지에서 돌아온 포르투갈 사람들의 부적응과 카보베르데에서 이주한 피식민지인에게 가해진 차별과 억압도 여전했으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유럽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은 쇠락하고 있었다. 

이 지역이 보여주는 세상 끝의 모습은 비유적인 수사가 아니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반복되어 온 주민들의 생생한 현실이자 20세기 초부터 이어진 해외 이주로 인해 고향을 떠나는 주민이 늘어나고 수력발전소 건설에 밀려 지역 공동체가 사라지는 비극적인 현실이 그곳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근대화에 힘을 쏟기보다 전통적인 농경사회를 고집했던 살라자르의 고립주의는 포르투갈 영화의 독자성을 가능하게 한 것 같다. 특히 헤이스와 코르데이루 영화가 보여준 새로운 민족지 영화의 가능성과 물질적 현실을 최우선에 둔 타협하지 않는 정신과 북동부에 대한 겸허한 태도는 시간이 갈수록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그들이 관심을 보이고 평생 헌신한 것은 국가의 정체성과 도시의 발전이 아니다. 지역에 보물처럼 숨겨진 독자성과 유물론적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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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우 헤이스는 1927년 포르투 인근에서 태어나 1950년대에 이미 시집을 낸 이름난 시인이자 화가이자 조각가였다. 그는 민속학과 민족지학을 독학했고 보도로 지역을 여행하며 지역 농민들이 사용하는 방언과 전설을 연구했다. 농민들과의 만남에서 얻은 것으로 자신의 언어를 다듬고 시 창작의 근원으로 삼았다. 또 포르투의 시네클럽에서 동료들과 함께 실험적 다큐멘터리와 민족지학에 근거한 영화를 제작했다. 카네이션 혁명 이후 시네마테크 운동이 활발해지고 포르투갈 영화센터가 새로운 감독들을 지원하고 리스본 국립연극영화학교가 학생들을 모집하자, 그는 1977년부터 199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화 미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 페드로 코스타,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 등 후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감독들을 열성적으로 지도했다. 

   헤이스는 트라스-우스-몽트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 마르가리다 코르데이루를 만나 부부가 되었고, 두 사람은 <자이메>(1974)를 시작으로 (코르데이루는 <자이메> 타이틀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헤이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트라스-우스-몽트스>(1976), <아나>(1984), <사막의 장미>(1989)를 함께 만들었다. 그들이 남긴 영화는 네 편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기록한 북동부 지역민의 일상은 우리에게 자연과 역사와 신화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남겼다. 이들의 영화는 민족지학 다큐멘터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고 현재까지도 큰 영향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기록과 허구를 유연하게 결합하며 초현실로 도약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역민에게 기성 배우 못지않은 강도 높은 연기를 스스로 펼쳐내길 요구하고, 그들의 방언을 사용해 카프카와 몽테뉴 등 작가의 텍스트를 낭송하거나 자기들의 일상과 감정을 소리 내어 말하도록 했다. 이런 방법은 지역의 근간이 되는 대지의 풍광과 주민의 삶과 그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노동의 구체적인 활동이 곧 현재라는 구체성과 맞닿아 있음을 증명한다. 우리는 그들의 영화에서 픽션과 다큐멘터리가 연결된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고, 상상과 사실, 꿈과 현실, 시와 노동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과 만난다. 무엇보다 소박한 사람들을 대하는 그들의 소박하고 헌신적인 태도에 깊이 감동한다.


   <자이메>는 리스본의 미겔 봄바르다 요양원에서 근무하던 코르데이루가 생애 거의 절반을 그곳에서 보내다가 1969년에 세상을 떠난 편집성 조현병 환자 자이메 페르난데스의 작품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부재하는 자이메의 초상을 그리기 위해 그가 거주했던 병실과 병원의 원형 구조물과 그가 남긴 그림과 글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그들은 환자의 정신질환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하거나 자이메의 삶을 되짚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미친 듯이 그려낸 그림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겠다는 의지로 <자이메>를 완성한다. 

이 영화는 운명처럼 1974년 혁명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상영되었고, 누구보다 두 사람의 진가를 빨리 간파한 주앙 세자르 몬테이루가 상영 직후 헤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후 영화 주간지 <시네필로>에 실었다. 헤이스는 “나의 목표는 적어도 자이메가 남긴 그림들을 필름에 담아 보존하는 것”이고 “순수하게 영화적인 고고학 작업이라 해도 만족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이메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그가 왜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는지 제시하지 않으며 섣불리 불운한 예술가로 단정하지 않는다. 그저 자이메가 존재했던 병실과 정원을 둘러보고 그가 남긴 것을 눈에 새기며 조심스레 어루만지듯 카메라를 움직인다. 단호하게 유물론적으로 자이메의 그림과 그가 머물렀던 장소에 초점을 맞춘 태도와 방법은 이후 그들이 만들 영화의 시작과 끝이 될 터이다. 몬테이루는 인터뷰 서문에서 “안토니우 헤이스의 등장은 현대 영화의 결정적이고 독창적인 한 걸음”이자, “오직 자신만의 엄격하고 급진적인 비타협성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영화의 실천을 이어가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적인 관문”이라 기술했다. 카메라 앞에 있는 존재를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부재하는 대상을 함께 끌어안아 물질적인 현실로 되살리는 그들의 영화가 이제 막 시작된 참이다. 


영화 <트라스-우스-몽트스> 스틸컷 이미지2


   헤이스와 코르데이루의 두 번째 영화 <트라스-우스-몽트스>는 독재에서 해방된 포르투갈의 떠들썩함과 거리가 먼 곳에서, 낯설지만 강렬한 소리로 시작한다. 산맥 너머라는 뜻을 가진 ‘트라스-우스-몽트스’는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능선을 타고 흐르는 거센 바람, 지역 방언, 마을 공동체, 전설과 신화가 숨 쉬는 땅을 터전 삼아 수도 리스본과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지역민의 삶을 보여준다. 중세 시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독자적인 생활 양식을 지니고 있는 북동부 지역은 전기도 포장도로도 없는 곳이다. 흙먼지가 날리는 골목에 돌집들이 줄지어 서 있고 나무로 얽은 지붕 틈으로 연기가 새어 나온다. 목동들이 높은 언덕에서 양을 치고 나귀를 탄 사람이 짐을 싣고 마을로 들어온다. 지층이 선명하게 보이는 바위에는 뜻 모를 오래된 문자가 그려져 있고 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나무들이 무성하다. 언뜻 보면 척박해 보이는 지형이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따스한 햇살과 타들어 가는 불꽃이 주민들을 감싼다. 이곳은 척박함과 생명이 공존하고 황야와 초원이 공존하며 자생적인 순환이 이루어진다. 

소년들이 진창이 된 길에 모여 놀고 소녀는 집안에서 그림을 그린다. 마을에 구전되는 전설은 어머니의 말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아이들은 상상 속에서 전설과 신화를 만난다. 어두운 집에 피운 불과 희미한 등불 아래 아기가 걸음을 떼고 식구들이 모여 밥을 먹는다. 마을 여성들의 주된 노동인 실 잣기와 베틀질이 끊이지 않고 주민들끼리 전하는 안부 인사에는 정겨움만큼 근심이 묻어난다.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 가족들의 편지가 도착하고 소년들은 어머니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때론 어머니가 불러주는 대로 답장을 쓴다. 소년들이 한겨울 고드름이 달린 강가에서 얼음을 깨트리고 검은 돌을 줍고 얼음 아래 죽어 있는 물고기를 바라본다. 버려진 친척의 저택에 들어가 먼지 쌓인 책과 초상화를 구경하고 축음기를 꺼내 음악을 듣는다. 소년들은 전설 속 이야기처럼 찰나에 흘러버린 몇백 년 시간을 꿈꾸고 미래의 자손들을 만난다. 다른 도시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마중 나가고 기억나지 않는 할아버지에 대해 묻는다. 

놀라운 것은 헤이스와 코르데이루가 <아나>와 <사막의 장미>까지 북동부 지역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왜 북동부 지역에 강한 애착을 지녔던 걸까. 헤이스는 몬테이루와의 인터뷰에서 “이 세상에 아직 남아 있는 ‘북동부들’에 제때 도착하는 것을 역사적 소명”이라 생각하며 그것이 “존중의 의미”라 말했다. 그에게 북동부는 “상상력과 시와 유희적 가치”가 보존된 땅이다. 꽃 한 송이와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와 한 덩이 바위와 돌집 한 채와 버려진 탄광과 수백 년에 걸쳐 구전된 전설과 주름진 농민의 얼굴과 목동이 양들을 부르는 소리가 곧 “인간적 가치와 문명적 가치와 지리적 가치와 대지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북동부의 유산들이 더 이상 “경매로 팔려나가지 않”게 하려고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이 땅을 찾고 머무르며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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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스와 코르데이루는 1974년에 소규모 촬영팀을 꾸려 언덕과 강으로 둘러싸인 북동부 마을들을 걸어서 이동하며 지역민들과 우정을 나눴다. 그들은 마을을 잇는 길을 걷고, 산 능선에 앉아 몇 시간이고 풍광을 바라보며 바람 소리를 들었다.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과 가족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얼굴을 응시했다. 마을 골목의 흙길을 걷고 바위투성이 산에 올라 마을로 향하는 구불거리는 길을 보았고 저 멀리 아스라이 사라질 듯한 능선들을 관찰했다. 몇백 년 된 나무와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목동이 양 떼를 부르는 휘파람 소리를 들었다. 마을 소년들의 놀이와 청년들의 춤과 억센 마디가 옹이처럼 박힌 손으로 베틀질 하는 할머니들의 움직임을 보았다. 헤이스와 코르데이루는 북동부 지역을 자기들 발로 내딛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기록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대했다. 동시에 그들이 채집한 기록 심층에 묻혀 있는 북동부의 자산을 추출하여 허구 안에 스며들게 하고 일견 모순돼 보이는 요소들을 나란히 붙여놓기를 즐겼다. 허구와 실재가 뒤섞이고 구체적 현실과 역사적 상상력이 서로에게 넘나드는 사이 픽션과 민족지 다큐멘터리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또 다른 현실이 탄생했다. 그리하여 가장들이 떠나고 어린이들과 노인과 여성들만 남은 땅과 이들의 일상이 모여 현실과 꿈과 기록과 시가 왕래할 길을 트고, 과거와 미래가 ‘지금’이라는 현재에서 펼쳐지는 물질적 현실이 되었다.


영화 <트라스-우스-몽트스> 스틸컷 이미지3


   그들의 장대한 시를 완성한 존재는 카메라 앞에 선 주민들인 것 같다. 헤이스는 세르주 다네, 장피에르 우다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 농민을, 한 아이를, 한 노인을, 먼저 그의 동료나 친구가 되지 않고서는 누구도 촬영한 적이 없다.”(<카이에 뒤 시네마> 276호, 1977년 5월)고 말했다. 헤이스와 코르데이루는 그들이 만난 노인부터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역사와 전설과 꿈과 악몽”을 카메라 앞에서 수행하게 했다. 그들은 교회나 국가의 법이 미치지 못하는 외진 곳에서 일상을 영위하며 조상부터 대대로 함께 살아온 나무와 바위 같은 자연에 대해 친밀함을 느끼는 주민들의 표정을 보았을 테고, 무너진 탄광에서 죽어간 이웃의 비극이 나에게도 일어날 것이라는 체념을 눈치챘을지 모른다. “살아 있을 때는 마을 사람이고 죽고 나면 마을의 흙”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마을의 모든 것이 되어 영원히 이곳에 머무르게 될 주민들의 운명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영화는 역사와 전설과 신화와 대지와 사람들을 대하며 허구와 과거와 미래가 ‘지금’ ‘이곳’으로 모여들고 쌓여 현실이라는 지층이 생겨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라 여겼던 것 같다. 


   어둠 속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브라간사와 미란다 두 두로 인근 마을 주민들에 의해 연기되었다.”라는 자막이 이어진다. 화면이 밝아지면 겹겹이 쌓인 능선들이 보이고 거대한 바위와 돌에 그려진 그림 문자에 이어 목동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한눈에 봐도 황량해 보이는 지형과 양치는 소년의 얼굴에 이어 마을과 돌집, 돌벽과 계단으로 이어지다가 카메라가 실내로 이동하면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전설을 들려준다. 어머니가 집안에 불을 피우자 불길이 그녀의 얼굴에 일렁이고 불가로 식구들이 모여든다. 이어 어둠 속에서 기차가 도착하고 어머니와 아들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만난다. 영화의 도입부는 이 마을을 처음 방문한 자가 찬찬히 둘러보는 시선처럼 구성된다. 마을의 지정학적 요소와 주민들의 일상을 소개할 때, 헤이스와 코르데이루는 지역의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현실만 골라 배치한다. 그중에서도 기차역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도입부에는 가장을 기다리는 모자의 모습과 기차의 도착과 아버지와의 해후가 담겨 있고, 후반부에는 학업을 위해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다. 기차가 떠나가고 이어지는 쇼트에서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평원을 달리는 기차가 보이고 솜뭉치 같은 덩어리에서 뿜어져 나와 재빨리 공기 중에 흩어지는 연기가 프레임을 덮는다. 기차는 프랑스와 독일로, 포르투나 리스본으로 떠나는 이 지역 젊은이들을 실어 나르고, 노인들과 어머니들과 아이들만 텅 빈 마을에 남겨질 것이다. 해 질 무렵 희미한 빛을 따라 움직이는 연기가 멀어져갈수록 마을의 쇠락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은 우리 눈앞에서 유령들에 대한 기억과 신화의 꿈과 더불어 밀려 나갈지 모른다.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 강력하게 생성되고 요동치다 소멸하는 연기는 지붕 틈새를 비집고 올라가는 가느다란 연기에 비해 초현실적인 형상으로 남는다. 다음 쇼트에서 목동이 언덕에서 기차의 궤적을 바라보면 구불거리며 움직이는 연기가 몰려오고 쏠려가고 마침내 흩어져 사라진다.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온몸으로 마주한 목동 주변에 뿌연 연기가 잠시 머물다 서서히 흩어져 간다. 

   목동의 얼굴과 양 떼의 움직임과 바람 소리가 <트라스-우스-몽트스>를 망설임 없이 닫으면 마을 주민이자 연기자 이름이 크레딧에 표기된다. 지명과 가족 관계에 놓인 인명이 나열될 동안 여전히 마을 주변을 맴도는 바람이 더욱 큰 소리를 내며 우리를 붙들어 맨다. 바람 소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사람들을 싣고 사라진 연기와 달리 시간의 흔적을 제 몸에 새긴 지층과 같은 불멸의 흔적이다. “내일은 누가 떠나게 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사라짐을 쇠락이나 소멸이나 이주나 죽음 뭐라고 명명하던, 마을에 쌓인 시간마저 흩어놓을 순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장면을 살펴보자. 카메라가 720도 패닝할 동안 옛 복장을 갖춰 입고 표정 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부터 노인, 중년의 남녀 얼굴이 이어지다 노동자 복장에 헬멧을 쓴 광부들의 얼굴이 이어지고 어느새 옛 복장의 남자들 얼굴로 이어지는 쇼트는 선형적으로 흐르는 시간과, 단절되고 불쑥 나타나는 시간의 틈새를 드러내는 동시에 연결한다. 한 사람의 앳되거나 주름진 얼굴은 마을의 역사가 고이 간직된 하나의 지층처럼 우뚝 솟아 자기의 존엄을 스스로 내보인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도, 선조들의 삶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마을을 감쌀 것이라는 선언이 간명한 패닝을 통해 행해진다. 바람 소리는 이미지가 사라진 후에도 마을 주민과 지역 마을들을 아우르고, 그와 동일한 강도로 국가와 시간과 지역과 언어를 뛰어넘어 현재 영화를 보는 우리까지 끌어안는 것만 같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 춤을 추는 건물에 드리운 그림자의 움직임과 한결같이 집안을 밝혀왔을 모닥불의 일렁임과 노동하고 빵을 굽고 잠이 들고 식탁에 가족이 모일 때마다 그들을 감싸준 돌벽은 고요하고도 위대한 침묵과 시간의 증인처럼 느껴진다. 돌과 바위 쇼트는 깨진 유리창과 뚫린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로 흥건해진 땅과 녹슨 기계가 한구석에 방치된 폐광산의 차가운 금속성과 대비를 이룬다. 이 땅에서 생겨나고 집을 위해 옮겨진 돌이 사람들을 머물게 한다면, 광산의 기계들은 사람들을 불안과 죽음으로 내몬다. 북동부 지역을 휘감는 거센 바람에 금속은 부식될지 모르지만, 돌은 다시금 쌓아 올릴 수 있다. 대지와 돌과 바람이 있는 한 마을의 역사와 시간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영화 <트라스-우스-몽트스> 스틸컷 이미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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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스와 코르데이루의 영화들은 매우 특정한 장소와 사람들과 시대에 뿌리내리고 있고 결코 현실의 표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신화와 꿈을 실재와 뒤섞고 서로 침투시켜 새로운 형태의 현실을 구성한다. <트라스-우스-몽트스>는 물질적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현실만이 새로운 시학을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다. 이와 같은 방식은 또 다른 부부 감독이자 비타협의 절대자와 같은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제작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세계화가 영화 제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구체적인 언어로, 구체적인 질문을 다루는 구체적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또 다른 비타협의 실천자인 헤이스와 코르데이루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헤이스는 포르투갈이라는 국가나 인류 전체를 다루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라질지 모를 지역을 여행하고 그곳에 뿌리내린 주민들의 일상을 길어내기 위해 평생 헌신했다. 구체적인 동시에 추상적이고 한 지역의 지형에서 광대한 우주가 조우하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꿈과 의례가 혼재하며 관찰한 현실과 신화의 상상력이 겹쳐진 영화를 만들었다. 게다가 다큐멘터리와 시, 사실과 허구, 고대와 아방가르드의 힘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두 사람의 지성은 직관에 자리를 내어주고 찰나를 낚아채는 관찰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트라스-우스-몽트스>의 마지막 기차는 단 한 번의 테이크로 포착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헤이스와 코르데이루가 그 영화를 찍기 훨씬 오래전부터, 여러 해에 걸쳐 수없이 많은 밤에 목격한 광경이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지역 역사와 문화와 신화와 언어에 대한 오랜 관찰과 연구가 바탕에 있더라도 그들의 통찰이 이끄는 대로 ‘그날 저녁’의 기차를 촬영했고 그 신은 불멸의 이미지가 되었다. 고요한 평원에 내려앉은 어스름한 시간에 거침없는 속도가 뒤섞이고 두 사람의 엄격한 원칙과 직관이 뒤섞인다. 기차가 달리는 평원이라는 물질적 현실은 이내 대지를 진동시키고 풀어놓으며 기체로 사라진다. 이 기차는 1970년대 후반 헤이스를 만난 페드로 코스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별들이나 행성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그들의 용기가 자기에게도 여전히 유지되기를 꿈꾼다고 했다. 세르주 다네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수단에서 비롯한 “구체성이 오히려 더 신비로운” 쪽으로 그들의 영화를 이끈다고 말하며 <트라스-우스-몽트스>를 “바로 여기, 그 어디도 아닌 곳. 바로 여기, 그 어디든 다른 곳.”이라 표명했다. 

헤이스와 코르데이루 영화는 동시대 감독들과 평론가들의 찬사를 넘어 포르투갈 영화라는 토양을 풍성하고 아름답고 예리하고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호드리게스는 리스본 국립연극영화학교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 <목동>(1988)에서 스승 헤이스를 오마주했고, 몬테이루는 <노란 집의 추억>(1989)에서 자이메가 살았던 병원의 원형 구조물을 패닝하며 광인들의 격렬함과 쇠약함과 음흉함과 유머를 탁월하게 표현했다. 고메스는 <친애하는 8월>(2008)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와 여름 축제에서 연주하는 밴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비스듬히 비껴놓은 방식으로 찍었다. 무엇보다 헤이스에게 가장 큰 애정과 존경을 지닌 코스타의 영화들이 있다. 폰타이냐스 빈민가에서 몇 해나 머무르며 지역민들의 집을 찾고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대화하고 기록했던 ‘폰타이냐스 3부작’부터 <비탈리나 바렐라>(2019)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가 현재, 끈질기게 머무르는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메인이미지 출처: Francisco Manuel Portugal e Gomes & Maria Raquel Paulo Rato Alves, “Arquitetura popular, lugares e paisagens no universo cinematográfico de António Reis e Margarida Cordeiro,” Simbiótica, v. 9, n. 3, 2022, p. 44, Fig.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