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애 (2024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 <오조준>, <선희이모>, <서를 담고>, <터치, 툭> : 명중하지 못한 삶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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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조준>, <선희이모>, <서를 담고>, <터치, 툭> : 명중하지 못한 삶을 위하여 장지애 2024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I. 명중하지 못한 삶이 슬며시 건네는 온기 단편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삶을 성급히 정의 내려버리거나 매끄러운 해답을 내놓으라며 우리를 채근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영화는 인물의 무너진 일상 틈새로 살며시 번져나가는 작고 미세한 떨림을 차분한 시선과 소리로 가만히 품어낸다. 이번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마음을 오래도록 사로잡은 네 편의 이야기(<오조준>, <선희이모>, <서를 담고>, <터치, 툭>)은 저마다 목표했던 삶의 과녁을 놓쳐버리거나 잠시 길을 잃은 이들이, 무언가를 매개로 타인과 자기 자신에게 가만히 다가가 손을 건네는 따스한 순간들을 포착한다. 이 네 편의 단편이 감정을 다스리는 방식과 시선, 그리고 몸의 호흡을 통해 어떻게 서툰 어긋남 속에서도 서로를 가만히 보듬어 안는지 마음을 담아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한다. 정해진 표적을 비껴간 총알처럼 우리 뜻대로 흐르지 않는 삶의 모퉁이에서, 이들이 끝내 서로의 손을 잡게 되는 그 뜻밖의 온기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영화 <오조준> 스틸컷 Ⅱ. 어긋난 시선과 조심스러운 손길 <오조준> : 표적을 비껴가며 비로소 마주한 타인의 얼굴 <오조준>은 10m 공기권총이라는 정밀하고 차가운 스포츠의 순간을 인물들의 엉킨 마음속으로 가만히 가져온다. 연인 순주가 사격부 코치에게 까닭 없이 폭행당하는 모습을 본 희영은, 복수를 마음에 품고 코치의 아내인 아영에게 의도적으로 다가간다. 희영의 눈빛은 처음엔 표적의 정중앙을 노리는 사격 선수처럼 무섭도록 차갑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그 서늘한 시선은 폭력을 휘두른 코치 본인이 아니라, 아무런 죄 없이 그 곁에 덩그러니 남겨진 그의 아내를 향해 서서히 비껴나간다. 영화가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은 참으로 독특하다. 배우들은 절제된 언어로 대사를 주고받지만, 카메라에 담긴 인물들의 얼굴에는 감추지 못한 떨림과 미세한 눈빛의 진동이 날것 그대로 고스란히 박힌다. 희영이 아영을 다치게 하려 마음먹었던 그 순간, 역설적이게도 아영의 눈동자 속에서 자기 자신과 닮아 있는 깊은 외로움을 발견하고 만다. ‘오조준’이란 본래 바람의 방향이나 총의 작은 오차를 보듬기 위해 일부러 과녁의 밖을 겨누는 사격의 기술이다. 희영이 가슴속에 품었던 복수의 총구는 표적을 정면으로 뚫고 들어가는 대신 무심히 비껴가고, 그 서틀게 어긋난 간극 사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차가운 경계는 조금씩 희미해진다. 딱 맞춰 명중하지 못했기에 생겨난 그 빈자리야말로 인물들이 오랫동안 감춰왔던 상처와 서로를 향한 뜻밖의 연민을 나눌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쉼터가 되어준다.
영화 <터치, 툭> 스틸컷 <터치, 툭> : 멈춰 선 차 안에서 들려오는 청춘의 가녀린 마찰음 영화의 오프닝은 운전면허 학원이라는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곳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역설적으로 잠시 멈춰 서 있어야만 하는 청춘들의 공간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에서 일하는 재은은 수강생으로 찾아온 고등학생 동혁에게 자꾸만 마음이 끌린다. 하지만 동혁의 마음은 여전히 지나간 전 여자친구와의 얽히고설킨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돈다. 영화는 성인과 미성년의 경계, 교문 안과 밖의 경계에서 헤매는 이들의 서툰 관계를 타이틀 그대로 조심스러운 ‘스킨십(Touch)’과 마음을 무심하게 흔드는 ‘밀쳐냄(Took)’의 미세한 소리로 엮어낸다. 좁고 답답한 운전석과 보조석 실내는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가 바짝 좁혀지는 자그마한 방이다. 재은이 동혁의 손을 덮으며 핸들 조작을 도와주는 그 짧은 순간의 접촉은, 굳어 있던 재은의 마음에 가만히 찾아온 작은 설렘이다. 그러나 동혁이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 조심스러운 손길은 가볍게 미끄러지며 조용한 마음의 소리를 낸다. 영화는 쓸데없는 감정의 과장 대신 차창 밖으로 무심히 흘러가는 길거리의 풍경과 거울에 반사되는 쓸쓸한 눈빛만으로 고독의 깊이를 그린다. 핸들이라는 사물은 누군가의 삶에 조심스럽게 개입해보고 싶은 서툰 마음이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청춘의 이정표다. 누군가의 마음 문을 가만히 두드렸다가 퉁겨져 나오는 그 미세한 소리야말로 제 발로 홀로 서기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지나쳐야 하는 참으로 정직하고 다정한 성장통의 흔적일 지도 모른다.
영화 <서를 담고> 스틸컷 Ⅲ. 깊은 숨과 덤덤하게 내어주는 온기 <서를 담고> : 상처를 품은 호흡이 만들어내는 피리의 구원 내림굿 반주를 하다가 큰 실수를 저질러 굿판을 망쳐버린 피리 연주자 수현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 피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마다 깊은 트라우마와 치열했던 지나간 날들의 기억이 그의 몸을 짓눌러온다. 카메라는 수현의 몸에 바짝 다가가 그의 가쁜 숨소리와 떨리는 입술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피리를 분다는 것은 폐부 깊숙한 곳에서 바람을 끌어올려 작은 대나무 관을 통해 온몸의 진동을 내보내는 지극히 신체적인 행위다. 붉고 어지러운 조명 아래서 수현의 호흡이 멈추고 다시 터져 나오는 순간마다, 카메라는 그 가쁜 호흡의 리듬에 가만히 발을 맞춘다. 수현이 다시 피리를 입에 대고 가슴 깊은 곳에서 숨을 끌어 올리는 것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 자기 자신의 아픈 몸과 마음을 다정하게 입혀주는 제례가 된다. 예전의 피리 소리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면, 실패의 트라우마를 가만히 마주한 뒤 불어내는 지금의 피리 소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가만히 안아주는 소리가 된다. 영화는 깊은 아픔을 직면하고 그것을 숨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나지막한 위로를 전해준다.
영화 <선희이모> 스틸컷 <선희이모> : 아무 말 없이 밥상을 차려주는 덤덤한 마음 영화 <선희이모>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의 아껴둔 사랑을 ‘돌봄’이라는 무심하고도 덤덤한 행위로 그려낸 차분하고 따뜻한 작품이다. 애견 미용사 선희는 주인이 찾아가지 않는 개 ‘메주’를 거두어 키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10여 년 만에 느닷없이 찾아온 조카 서연이 내일 멀리 뉴질랜드로 떠난다는 소식을 무심히 전한다. 미용실과 자그마한 집 안에서, 버려진 개 메주와 떠나려는 조카 서연, 남겨질 선희는 모두 누군가에게 온전히 안기지 못한 쓸쓸한 존재들이다. 영화는 흔한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선희가 개 메주를 가만히 씻겨주고, 털을 고르게 깎아주고, 따뜻한 바람으로 말려주는 일상적인 손길을 화면의 중심에 놓는다. 말없이 조카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짐을 챙겨주는 선희의 무심한 행위는 버려진 개 메주를 가만히 보듬는 마음과 고스란히 닮아 있다. 선희의 다정함은 어떠한 대가나 대단한 고마움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 곁에 잠시 머물다 떠날 불쌍한 존재에게 자신의 체온을 조용히 내어줄 뿐이다. 뉴질랜드로 떠날 조카와 혼자 남겨질 선희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게 될 개 메주는 모두 버려짐의 상처를 품고 있지만, 함께 따스한 밥을 나눠 먹고 털을 빗겨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온기를 가만히 나눈다. 영화는 말없는 돌봄이 어떻게 서로의 삶을 가만히 지탱해 주는지 서정적인 언어로 차분하게 보여준다. Ⅳ. 조금 비껴섰기에 비로소 마주한 보듬음의 자리 네 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인생의 중심에서 조금 비껴나 있거나, 멍하니 멈춰 서 있거나, 아픈 실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도 이들의 삶이 갑자기 기적처럼 밝아지거나 모든 오해가 눈 녹듯 사라지지는 않는다. 희영의 복수는 어정쩡하게 남아 있고, 재은과 동혁의 마음은 평행선을 달리며, 수현의 피리 소리에는 여전히 슬픔이 묻어나고, 선희는 조카를 보낸 뒤 다시 고요한 방에 홀로 남겨질 것이다. 하지만 이 네 편의 짧은 영화들이 우리 가슴에 남긴 것은 ‘정확히 명중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따스한 손길’에 있다. 복수의 과녁을 비껴간 총구는 미움 대신 타인의 슬픔을 알아채는 눈을 열어주었고, 차 안의 협소한 공간에서 울리던 미세한 마찰음은 홀로 멈춰 서 있던 청춘들이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는 나지막한 신호가 되었다. 단절되었던 피리 소리는 스스로의 상처를 가만히 어루만지는 구원의 숨결이 되었으며, 버려진 존재들에게 무심히 내어주는 따스한 밥상과 빗질은 외로운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꺼지지 않는 돌봄의 온기를 증명해냈다. 이들이 담아낸 이 단편들의 세계는, 늘 정답만을 강요하는 세상의 차가운 등쌀 속에서 잠시 길을 잃고 멈춰 서는 행위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나지막이 일깨워준다. 조금 서툴고 파편화된 세상일지라도 우리가 서로에게 조심스러운 손길을 건네고 숨을 불어넣어 주는 한 우리의 삶은 결코 서글프게 끝나지 않는다. 명중하지 않은 상태가 남겨놓은 그 다정한 여운이야말로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 가슴 깊은 곳에 가만히 얹어주는 가장 따스하고 견고한 온기는 아닐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