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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랑방)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영화사랑방)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ie Bad

  • 시네마테크
  • 무료
작품정보
96min  | DVD  | color  | Korea  | 2000
감독
류승완(Ryoo Seung Wan)
출연
류승완,박성빈,류승범
영화정보

*상영작: <달은 해가 꾸는 꿈>(박찬욱,1992)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1998) <플란다스의 개>(봉준호,2000)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류승완,2000)




한국영화의 어떤 물결: 네 편의 데뷔작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등장한 몇 편의 장편 데뷔작들은 이후 한국영화의 흐름을 단번에 바꾸었다기보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감각을 시험한 결과물들이었다. 박찬욱, 허진호, 봉준호, 류승완은 이 시기 첫 장편을 통해 장르를 다루는 태도,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 공간과 리듬을 조직하는 방식에서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 영화들은 완성도나 흥행 성과와는 별개로, 이후 각 감독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박찬욱 감독은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에서 느와르와 멜로를 의도적으로 결합한다. 이복형제와 은주를 둘러싼 삼각관계는 장르적 관습보다는 감정의 과잉과 충돌에 방점이 찍힌 작가주의적 스타일을 드러낸다. 이는 당시 박찬욱이 스스로 표방한 B급 감수성을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다. 스튜디오라는 밀폐된 공간의 기묘한 활용과 배우 이승철의 어떤 표정과 몸짓은 완성도와는 별개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흥행과 평단 모두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욕망과 폭력을 인물 관계속에서 집요하게 증폭시키는 연출에서 이후 박찬욱 영화 세계로 이어질 단서를 확인할 수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죽음을 앞둔 사진사 정원과 주차단속원 다림의 시간을 담은 멜로드라마다. 주차단속 현장, 아이스바를 건네는 순간, 스쿠터를 타고 오가는 장면들은 감정을 과잉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관계의 온도를 섬세하게 누적시킨다. 이 영화는 신파적 설정을 최소화한 채 일상의 디테일과 정서의 여백을 통해 1990년대 한국 멜로의 감각을 갱신했다. 한석규와 심은하의 절제된 연기 호흡, 차갑고 옅은 겨울의 색감은 이후 〈봄날은 간다〉로 이어질 허진호의 스타일과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출발점으로 읽힌다.


<플란다스의 개>는 사소한 소음에서 출발한 불만이 점차 왜곡되며 폭력으로 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블랙코미디다. 시간강사 윤주는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집착하고 그 과정에서 경비원 은실과 엮이며 일상의 균열을 드러낸다. 영화는 특정 사건의 해결보다는 아파트라는 폐쇄적 공간 안에서 축적되는 불안과 무기력을 관찰하는 데 집중한다. 노란 우비, 종이 상자와 같은 사물의 반복적 활용과 장면의 리듬감은 이후 봉준호 영화에서 두드러질 디테일 중심 연출과 사회적 관찰 감각의 초기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당구장 살인을 기점으로 형제들의 삶이 서로를 잠식하며 붕괴해가는 과정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갱스터 영화다. 성빈,석환,상환으로 이어지는 인물들의 선택은 구원보다는 반복되는 죄책감과 폭력의 순환을 드러내며 사건보다 몸의 충돌과 상황의 누적에 초점을 맞춘다.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액션과 실제 싸움에 가까운 신체 움직임은 당시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감각을 만들어낸다. 특히 패싸움 장면들은 이후 류승완 연출에서 지속적으로 변주될 액션 스타일의 초기 형태이자 실험으로 자리한다.


이 네 편의 데뷔작은 공통적으로 완결된 성취라기보다, 각자 무엇에 집중하고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밀어붙일 것인지를 시험한 기록에 가깝다. 실패와 미완, 과잉과 불균형을 포함한 이 첫 장편들은 이후 작업에서 반복,수정,확장될 요소들을 이미 내부에 품고 있다. 지금 다시 이 영화들을 마주하는 일은 결과로서의 명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가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던 순간의 불안정한 에너지를 되짚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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