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피프레시) 글모아보기
[3월 월요시네마 원고]피프레시 월요 시네마- <가여운 것들>에 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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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월요시네마 원고]피프레시 월요 시네마- <가여운 것들>에 관하여 국제영화비평가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la Presse Cinématographique. 이하 FIPRESCI/피프레시) 한국지부는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오후 8~10시, 줌(Zoom)를 통해 월요 시네마 시간을 갖기로 하고, 지난 3월 25일 심영섭 피프레시 한국지부 회장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 Poor things, 2023>에 대해 발제 한 뒤 참가자들이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피프레시 회원이기도 한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의 사회로 진행된 첫 줌 세미나에서는 50여 명이 참여했다. 피프레시는 1930년 전 세계의 전문영화비평가와, 영화기자, 각국의 영화 단체들이 영화문화의 발전을 위해 결성한 단체로, 한국지부의 경우 1994년 창립되어 올해 심영섭 평론가가 2년 임기의 13대 회장에 취임했다. -사회자: 안녕하십니까? 심영섭 회장님이 취임하신 뒤 의욕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월요시네마를 진행키로 했는데, 오늘은 월요시네마를 처음 여는 날인데요. 오늘 발제는 심영섭 회장님이 직접 해주시겠습니다. -발제자: 영화평론가 심영섭입니다. 여러분, 줌이라는 공간에서나마 이렇게 만나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얘기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영화 <가여운 것들 Poor things>은 제8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작품입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여우주연상, 의상상, 미술상, 분장상 4개 부문 수상을 한 작품이기도 하죠. 이 영화를 어떻게 소개를 해드릴까요? 한 여성 프랑켄슈타인의 성장담, 혹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되풀이하는 것’ 같은 인류 역사의 발달사, 혹은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을 담은 영화 등 어떤 것으로도 읽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담론이 가능한 창의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원작자부터 말씀드리면요. 엘러스데어 그레이(Alasdair Gray)는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작가입니다. 이 소설 <가여운 것들>은 90년대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19세기 스타일의 서간체 형식을 담고 있구요. 영국의 제국주의 그리고 남성성의 횡포 계급 같은 것에 관한 비판이 담겨 있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09년도에 소설을 읽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스코틀랜드로 작가 엘러스데어 그레이를 찾아가면서 영화 프로젝트 시동을 걸었고요. 근데 아쉽게도 작가는 2019년 85세 일기로 돌아가셔서 이 영화를 못 보셨다고 합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그리스 출신의 영화 감독인데요. 1973년 아테네에서 태어났는 데요. 그리스 영화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광고 활동으로 영상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2005년에 장편 <키네타>를 발표했고, 2009년에 발표한 게 바로 <송곳니>입니다. 영화 <송곳니>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에서 자라나는 세 자녀를 둔 가족 얘기예요. 자녀들은 외부 세계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고요. 아빠만 나갈 수 있어요. 아빠는 공장에 다니는데 밖에서는 멀쩡하게 행동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완전 폭군 이고요. 더 기가 막힌 건 단어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서 아이들한테 가르쳐줘요. 에곤 실레 : Standing Naked Girl with Long Black Hair (1911) 예를 들면 아이들은 바다라는 단어를 의자로 바꿔서 알고 있죠. ‘바다에 앉아서 나랑 얘기하자’라는 식이죠. 이 가족 5명은 폭군이 만든 언어 체계 안에서 사는 거죠. 억압, 독재, 공포, 근친상간 이런 얘기가 나오는 굉장한 영화였거든요. 이후 발 표한 2015년도 영화 <랍스터>는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머, 비극, 풍자 등이 가득하고, 사랑을 한다는 게 상대와 내가, 나와 그녀가, 얼마나 동등성과 균형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판타지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성애 체제에 대한 풍자가 들어가 있는 영화이지요. 제가 보는 란티모스의 작품들은 상징적이고, 신화를 차용하며 또 선 넘는 금기를 어기는 스토리텔링이 있고요. 감정적으로 대단히 억압적인 인물들이 등장하고, 근친 상간, 동성애 같은 불온한 욕망이 튀어나오고, 화려하고 인공적인 미장센이 특징인데요. 어떤 상을 받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이 사람이 이제는 어떤 비경을 보여줄까 라는 관심이 가는 감독이랍니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들에는 몇몇 작가주의적 장면이 있는데요. 먼저 댄스신입니다. 거의 매 영화마다 항상 댄스신을 넣는데 억압적 체제에 대한 반항과 탈출구를 상징하는 장치처럼 보여요. 이 외에도 ‘눈을 가리는 장면’이나 ‘눈을 찌른다’ 거나 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오고요. 등장인물을 마취제로 마취시키는 굉장히 섬뜩하고 폭력적인 장면들도 매 작품마다 반복됩니다. 이 마취제 장면은 등장인물이 순식간에 무기력해지는 비인간적인 느낌을 배가하지요. 스태프들을 소개하자면, 각본은 토니 맥너마라와 감독님이 같이 각본을 썼고요. 주연은 <라라랜드> 이후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한 엠마 스톤이 주연을 맡았으며, 촬영은 로비 라이언, 아일랜드 유명한 촬영 감독이죠. 쇼나히스하고 제임스 프라이스 미술 감독, 저스킨 펜드릭스 음악감독이 참여했습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캐릭터를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이름으로 좀 풀이를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름으로 풀어본 캐릭터 1)벨라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예를 들어 벨라죠. 아름답다 혹은 종소리 또 라틴어론 전쟁. 이런 의미를 지닌 여성인데요. 아름답지만 어떻게 보면 순진하고, 순진하지만 당당하고, 당당하지만 수치심 없고, 이런 남성과 여성성을 다 갖고 있는, 아이와 어른을 다 갖고 있는 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리이스어로는 ‘희다’라는 뜻도 있는데요. 어찌 보면 타블라 라사, 즉 백지 같은 여성이 바로 벨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배우 엠마 스톤이 분했지요. 2)빅토리아 그 다음에 또 다른 엠마 스톤이 분한 캐릭터가 빅토리아죠. <가여운 것들>의 첫 장 면에서 다리 난간에서 떨어져 죽는 여자인데, 가장 위대한 군주 빅토리아 시대의 빅토리아 즉 승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빅토리아 시대의 빅토리아 즉 억압의 희생자 같은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 억압당하는 여성들을 상징하는 것 같은 여성이기도 합니다. 3)갓윈 그 다음에 갓윈이라는 캐릭터가 있죠. 갓(GOD)-신, 윈-다윈. 창조주 신과 진화학자 다윈을 합친 것 같은 매드 사이언티스트 캐릭터인데요. 대중 문화에서는 원형적 캐릭터죠. 아주 우수한 두뇌를 지니고 있고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발명품을 내 놓지만 윤리적 • 도덕적으로 사회적 관습이 내면화가 안되어 있고, 반사회적이고 미쳐 있는 그런 과학자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4)맥스 스캔들스 그 다음에 이제 맥스 스캔들스라는 재밌는 이름을 가진 과학자 겸 의사가 있죠. 벨라는 이 스캔들스를 캔들, 즉 양초라고 부르는데요. 벨라의 약혼자이기도 하고, 영화에서 유일하게 벨라를 오랫동안 기다려주는 그런 캔들 같은 정말 따뜻한 면이 있는 캐릭터인 것 같습니다. 5)마담 스위니 다른 캐릭터도 많지만, 꼭 이름으로 소개하게 싶은 사람이 파리에 있는 사창가의 마담이죠. 마담 스위니라는 여자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온몸에 다 전신 타투를 한 여잔데요. 캐서린 헌터라는 배우가 분했습니다. 문신은 마담 스위니의 살아온 역사를 은유한 다고 합니다. 스위니는 돼지란 뜻이죠. 돼지가 이미지는 좀 지저분하지만 꽤 청결하거든요. 비록 사창가의 포주이지만, 배우 본인 입으로는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형상화한 이상주의자인 페미니스트를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합니다. 6)덩컨 이외에도 배우 마크 러팔로가 분한 덩컨이 있습니다. 마크 러팔로에 따르면, 엠마 스톤과 달리 이 역할을 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이 컸다 합니다. 그래서 항상 촬영장 에서 ‘도망가고 싶다 어떻게 연기해야 될지 모르겠다, 굉장히 고민하면서 연기했다’고 합니다.
네 이제까지 이름으로 풀어본 캐릭터를 소개했습니다. 제목의 의미 제목 가여운 것들, 누가 여쭤 보던데. ‘누가 가여운 것들’이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벨라를 생각했구요, 그러다가 여성들이 가여운 것인가로 의미를 확장해 보았구요. 그러다 그 여성들을 혹은 타자들을 불쌍하게 보는 사람들, 우리 자신 도 어떻게 보면 편견에 사로잡힌 가여운 것들이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성 성기 같은 : 피어나는 꽃 같은 -사회자: 벨라와 관련된 남자들은 하나같이 어떤 좀 폭력적이고 뭔가 문제가 있는 남성들로 나오잖아요. 어떤 의미일까요? -심영섭: 영화를 사회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흥미로운 점은 서구 역사가 여성에게 투사하고 억압한 내용들이 전부 다 영화속에 등장한다는 겁니다. 여성에 관한 서구 의 억압 역사의 보고서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갓윈은 벨라를 구속하고 사 랑이라는 이름으로 과잉보호합니다. 벨라의 부모가 탐험가라고 거짓말도 합니다. 어찌 보면 갓윈도 벨라를 사랑하지만 아주 삐뚤어진 방식의 사랑을 하죠. 마치 부모가 자식을 과잉 보호하고 세상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덩컨은 벨라에게 해방과 자유를 약속하고 달콤한 말로 꾀어내지만, 어느새 벨라에게 상류 사회의 규범을 강조하고, 벨라의 언어를 평가하고, ‘단 세 가 지 단어만 말하라‘라고 구속하고, 사사 건건 통제하고 벨라의 넘치는 섹슈얼리티를 감당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치졸하고 이중적인 남성성을 보여줍니다. 크루즈에서 만난 남자 해리, 흑인 남성이죠. 해리는 벨라를 존중하지만 자꾸 벨라를 가르치려고, 맨스 플레인 합니다. 세상을 직면시키려 들면서 벨라에게 굉장한 상처도 주지요.
그 다음에 전 남편 알프레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할례를 감행하려 들잖아요. 아마 빅토리아의 자살 시도의 원인이었을 거고요. 어떻게 보면 강한 폭력성을 갖고 있는 권위적이고 여성을 완벽히 소유하려고 드는 남성상이죠. 놀라운 건 이 네 남성들의 행동을 지금도 전 세계에서 어느 누군가가 여성들에게 하고 있다는 것이죠. 아프리카에서 아랍에서 여성 할례 전통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사랑으로 과잉 보호하고 통행금지, 여행금지, 통금이 있는 가정도 아직 있습니다. 여성들을 가르치려 들고,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들 또한 많습니다. 즉 <가여운 것들> 속 남성상은 여성에 대한 서구 억압의 역사를 상징하는 캐릭터라 고 말할 수가 있죠.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상당히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갖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만이 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회자: 일단은 대략적으로 제가 좀 궁금한 점을 질문드렸고요. 이제는 여기에 참석 하신 선생님들이 개인적으로 궁금하신 거, 또 말씀하시고 싶은 거 있으면 좀 얘기를 같이 나누면 좋겠습니다. Q. 참가자 1: 영화의 여러 가지가 궁금하지만 특히 흑백과 칼러의 변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흑백과 칼라의 변환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흑백은 바로 갓난아기 같은 아직 생후 몇 개월 안 된 벨라의 정신 세계, 아직 칼라가 틈입하지 않은 세계, 성을 느끼긴 하지만 섹스를 하지 않는 벨라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고요. 심리발달 단계로 보자면 벨라는 프로이트의 발달 단계인 구강기, 배변기, 남근기 이런 식으로 발달을 밟아 나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마구 먹고, 먹을 것에 집착하고, 그 다음에 오줌을 아무데서나 싸고, 그러다가 자위로 자신의 성기를 느끼거나 하는 것들이죠. 그 단계들은 모두 흑백처리가 되었고, 그 다음에 정말 섹스를 통해서 성을 느끼기 시작할 때 칼라로 전환되었죠.
그러니까 이 영화의 첫 칼라 장면은 벨라와 덩컨의 섹스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성적으로 눈을 뜨고, 새로운 개안을 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모험을 하고, 사춘기에 들어서고. 벨라가 뭔가 파격적으로 내면이 전환되었을 때부터 화면은 색으로 넘실거립니다. 리스본은 어떻게 보면 세계를 모험하러 떠난 벨라의 굉장한 흥분, 사춘기,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들뜸, 상승 이런 것들을 보여주거든요. 세상을 탐험하러 나선 벨라의 열광 상태를 보여준 것이 칼러였고, 그러나 벨라가 점차 현실을 알아가면서 칼러의 색조와 톤은 누그러지고 파리에 이르르면 거의 다시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차분한 세계로 변환되는 것 같습니다. Q. 참가자 2: 올려다 보는 시선과 내려다보는 시선에 대한 질문 (저는 우선은 벨라가 여행을 하면서 빈민가를 보게 되잖아요. 배에서요. 위에서 이 제 아래를 바라보면서 죽어가는 아기를 보면서 그때 이제 벨라가 슬픈 감정을 느끼 더라고요. 시선처리나 위치, 벨라의 감정적인 부분의 관계도 궁금합니다.) 아주 잘 보셨네요. 이 영화의 위치 상승과 하강 추락 이것들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장치죠. 리스본에서 벨라는 파두 가수의 노래하는 모습을 올려다 봅니다. 그림을 함께 보실까요? 또한 런던에서 덩컨을 만나는 장면에서 벨라가 계단을 올라가서 지붕 위에 올라가 서 세상을 바라다보는 장면이 있거든요. 벨라가 얼마나 흥분하고 세상을 동경하고 조증인 상태로 세상에 대해 열광하는지를 보여주는 시선의 각도와 위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첫 장면은 파란 옷을 입은 빅토리아가 다리 위에서 투신하거든요. 죽음의 강으로. 감정적인 우울에 사로잡힌 굉장한 정서적 하강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다가 ‘배 Ship’ 라는 제목의 이미지가 나오면, 거대한 손위를 벨라가 하나씩 한 계단씩 한 계단씩 내려갑니다. 하강을 하고, 그러다가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세상의 모순을 직면하게 됩니다. 강간 강도 절도 같은 범죄에 맞닥뜨리게 되는데요. 이때는 완전히 하이 앵글샷, 즉 내려다보는 이미지로 전환을 합니다. 영화용어로는 ‘버드 아이 뷰’라고 합니다. 새가 마치 땅을 보듯이 ‘버드 아이 뷰’의 위치로 내려다 보죠. 요약을 하면 이 영화에서 추락과 상승은 그냥 무심한 장치가 아니라, 벨라가 세상 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들뜨고 흥분하고, 자기 식대로 바라보고, 또 성적으로 자각 할 때는 상승의 이미지로, 반대로 현실을 마주하고 세상의 고통과 일탈과 범죄를 맞이하고서 이전과의 다른 삶을 찾아갈 때는 하강 이미지와 버드 아이 뷰 샷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Q. 참가자 3: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메시지에 대해 궁금합니다. 사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전작들에서는 어떤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의 엔딩은 조금 다릅니다. 이 엔딩 장면은 칼라도 아름답지만 그냥 모든 괴물들이 다 그 상태로 함께 합니다. 흑인인데 동성애자라든가, 아니면 여자 프랑켄슈타인이라든가, 아니면 사람인데 양의 뇌를 가진 남자라든가, 뇌를 이식받은 여자아이라든가 모든 괴물성을 집약한 사람들이 그냥 같은 집에서 살고 있거든요.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 중에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를 한 집에서 정답게 살게 해줘요’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이것은 한쪽 팔이 없는 사람과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이 서로의 팔과 다리가 되어주면 되는 세상.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는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연대감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참가자 4: 에필로그하고 프롤로그 화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에 오래된 건축의 일부분들이 비춰지면서 ‘도대체 뭔 의미로 감독이 계속 저걸 보여주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고 끝까지 못 일어나고 봤어요. 이 점에 대해 더 듣고 싶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건 란티모스가 우리 인간을 볼 때 굉장히 물질적으로 사람을 다룬다는 점이었어요. 이 영화에서 에필로그에 나오는 장면들이 그러했어요. 벽 스위치는 완전히 여성의 성기 이미지이고, 창문은 남근적인 이미지이기도 하죠. 이 영화 속의 인테리어 디자인들은 잘 보면 성적인 혹은 성기적인 이미지들이 많습니다. 우리 관객들이 스쳐 지나갈 수 있지만요. 저는 감독이 보는 인간관 중 하나가 유물론적이고 성적인 동기에 추동되는 인간관이 도드라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무엇인가? 그렇죠. 영혼, 감정, 수치심 다 있지만. 인간은 그것을 뛰어넘어서 정액, 타액, 혈액, 살, 장기로 이루어진 짐승이기도 하거든요. 결국 죽어가는 짐승이죠.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성을 경시하지도 않고, 비하하지도 않고, 도덕적 규범으로 재단하지도 않고 그저 마치 주변에 있는 인테리어의 한 부분처럼 취급하고 있는데요. 주인공과 이 사회 전체가 은밀한 욕망에 포위되어 있는 듯이 보입니다. Q. 참가자 5: 각 도시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이유를 좀 더 알고 싶습니다. 각 도시에 관한 시각적 이미지들은 아주 뚜렷한 형태로 구분이 되어 있어요. 런던은 원(써클)의 이미지. 달걀, 둥근 접시, 난자 같은 둥근 이미지들. 창문도 동그라미 이미지, 즉 사방이 둥근 이미지입니다. 여성적인 그리고 둥글고 부드러운 가정의 공간. 또 자기 방식으로는 갓윈이 벨라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이미지가 들어찬 공간이라고 보여집니다. 촬영도 런던에서는 어안렌즈나 아이리스 촬영이 주를 이룹니다. 아이리스 화면은 옛날 클로즈 업이 없던 시절에 집중할 곳만 이렇게 집중하게 동그랗게 만들었던 화면 방식이거든요. 예전에 흑백 영화 시대 때 썼던 방식인데요. 그래서 고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그 다음에 어안렌즈 촬영이 많아요. 이렇게 많이 상이 왜곡돼 보이잖아요. 마치 어항 속의 물고기가 보는 것 같다고 해서 어안렌즈라고 해요. 많이 왜곡되게 세상을 보고, 자기식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여기 집에 갇혀 있는 벨라의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는 어안렌즈 촬영도 많았고요. 반면 리스본은 오색 찬연하고 색깔들이 빛이 나고, 정말 물고기를 타고 날아 다닐 만큼 판타지적이고요. 리스본은 벨라에게 일종의 탈출구고 또 사춘기에 해당되고, 섹스를 맘껏하고, 카메라도 좌우로 막 역동적으로 움직이고요. 크루즈 배의 장면은 수평적이고, 그러나 바다에 의해 차단된 공간이고, 파란 물의 이미지가 많고요 벨라는 항상 책을 읽거나 책을 들고 다닙니다. 런던에 수미상관을 이루는 곳이 파리의 사창가이지요. 파리의 사창가 창문은 자세히 보시면 모두 다 남근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죠. 길거리의 쇠창살도 대단히 남근적인 이미지죠. 판타지적인 요소가 없고 색깔이 거세되어 있고 아주 희고 눈도 많이 내립니다. 파리를 남성적인 욕구가 가득 찬 곳으로 묘사하면서,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적이고 성적 억압이 심하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표현하고 있고, 런던과 대비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렇게 각 도시의 스타일과 형식을 통해서 벨라가 지금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인테리어와 색감, 배경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벨라가 어떤 계급 사회에 놓여 있는지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섬세한 미술 감독들의 솜씨가 놀랍고요. 더 놀라운 것은 거의 다 셋트를 세워서 만든 것이라는 점이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촬영을 할 때, 스타일을 참고한 영화는 세 가지가 있다 고 합니다. 첫째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그리고 배는 간다, 둘째는 루이스 브뉴엘의 ’세브린느‘, 셋째는 멜 브룩스의 ’영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합니다.
-사회자: 발제 맡아주신 심영섭 교수님. 오늘 참석해 주신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지부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영화를 보시고 또 이 영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이 자 리에 오신 우리 모든 관객분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들 한번 댁에 가셔서 시간이 되시면 나중에 <가여운 것들>을 다시 보시면 ‘영화를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다.’라고 느끼실 수 있는 그런 시간 되셨다고 자부합니다. 감사합니다. □ 발제자 심영섭 서강대 생명공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석, 박사. 1998년 씨네 21로 등단. 초 대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장. 초대 한국사진치료학회 회장. 현 대구사이버대 상담 심리학과 교수. 심영섭아트테라피 및 상담센터 사이 고문. 한국국제영화비평가 연맹 한국지부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