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비평
뻔하지 않게 유쾌한 영화 <빅토리> |
---|
뻔하지 않게 유쾌한 영화 <빅토리> 송영애(한국영화평론가협회) 지난 8월 14일에 개봉한 박범수 감독의 <빅토리>는 보는 내내 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떠오르게 한다.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 치어리딩을 소재로 한 작품 등 떠오르는 작품의 범위도 매우 넓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비슷하고, 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늘은 <빅토리>가 뻔한 듯 뻔하지 않은 이유 몇 가지를 찾아보려 한다. 익숙한, 재구성된 과거 사실 <빅토리>가 1999년을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모든 관객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에 따라 어떤 이에게는 익숙함을, 또 어떤 이에게는 낯섦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익숙함과 낯섦의 정도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오늘 다루는 익숙함은, 가까운 과거를 배경으로 고등학생 주인공이 등장하는 최근의 영화나 드라마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공중전화, 삐삐, 폴더폰, 카세트테이프, mp3플레이어, 필름 카메라,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의 소품이 강조되며,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들도 끊임없이 흐르는 식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1986년을 배경으로 한 <써니>(강형철, 2011), 1988년과 1994년을 배경으로 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신원호, 2015)와 <응답하라 1994>(신원호, 2013), 1999년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20세기 소녀>(방우리, 2022), 그리고 2008년으로 타임슬립 하는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윤종호, 김태엽, 2024) 등을 통해 익숙해진 방식들이다. 그런데 <빅토리>는 그중 일부분은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또 다른 부분에서는 다르게 사용한다. 익숙한 과거 재구성 방식들이 조금씩 변형되어 예상을 빗나가게 만든다. 그래서 <빅토리>는 뻔한 듯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영화가 되었다. 오로지 그때 그들만 <빅토리>는 시작부터 바로 1999년 거제도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바닷가 오락실에서 필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맞춰 DDR에서 춤을 추고, 구경하던 학생들은 환호한다. 그러나 필선과 미나에겐 마음껏 춤을 출만한 공간이 없다. 교내 댄스반도 사라졌고, 연습실도 없어졌다. 화장실에서 춤을 추는 것도 쉽지 않다. 이들은 연습실 확보를 목표로, 서울에서 전학 온 치어리더 세현(조아람)을 앞세워 치어리딩 반을 만들기로 한다. 그러려면, 반원을 모집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빅토리>에는 회상 장면도 없고, 타임슬립을 통해 가게 되는 과거 장면도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시간이 흘러 현재 장면으로 넘어가지도 않는다. 중년 배우 모습으로 등장한 주인공이 ‘그땐 그랬지’ 식으로 과거를 회상하거나,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지 않아 오히려 신선할 정도다. 현재 기준에서 과거일 뿐, 1999년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치어리딩 반 밀레니엄 걸즈의 이야기만을 보여준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10대 화자에 의해 전개되어, 오로지 그때 그들에게만 몰입하도록 한다. 신나는 파업 현장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경우는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써니>에서는 대학생들의 시위 현장이 등장하는데, 이 시위 현장은 시위대의 시선이나 전경이나 당시 정권의 시선 대신에 10대 인물들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음악까지 더 해져 꽤 인상적이다. <빅토리>에서는 조선소 파업 현장이 조금 다른 시선에서 등장한다. 이 파업 현장은 밀레니엄 걸즈 단원 대부분의 아버지가 일하는 직장인이자 치어리딩 실전 연습 공간으로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 파업 상황이 해결되는 내용이 나오지는 않지만, 파업 노동자들이 주인공들의 가족으로서 서로 사랑하고 응원하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반갑게 느껴진다. 우리를 위한 응원 영화 <빅토리>는 끊임없이 흐르는 당시 음악과 바랬지만 밝은 색감이 어우러져 더욱 유쾌해진다. 무지막지한 빌런이 등장하지 않고, 각자의 사정과 상황으로 갈등하던 친구들, 선생님, 딸, 아버지, 가족들이 화해하는 모습도 그린다. 현재 장면이 나오지 않으니, 1999년을 살아낸 그들의 미래는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그들끼리는 서로 응원하고, 함께 했을 것 같다. ‘축구팀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응원하자’는 밀레니엄 걸즈처럼, 2024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어떻게 응원하고 있을까? <빅토리>는 이런 고민을 기꺼이 하게 만드는, 뻔하지 않으면서도 유쾌한 응원 영화다. (사진 제공: ㈜마인드마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