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비평
<딸에 대하여> - 서로의 세계가 겹쳐지는 순간에 깃드는 작은 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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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 서로의 세계가 겹쳐지는 순간에 깃드는 작은 빛 박예지 2022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딸에 대하여>는 엄마와 딸, 그리고 엄마가 돌보는 노인 세 세대를 걸쳐 소수자로서 불안정하게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삶과 관계를 그린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힘겨운 분투를 벌이고 있는 여성들의 삶을 지나치게 암울하게 그리거나 그로부터 오는 정서를 고립, 불안, 공포로 전환해 장르화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형식 안에서 서로의 세계가 겹쳐지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대학 강사인 딸 그린(임세미)은 자취를 하다 금전적인 문제로 엄마(오민애)에게 돈을 빌리려 한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남은 자산은 죽은 남편이 남기고 간 낡은 빌라 한 채뿐이다. 엄마는 그린에게 다시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만, 그린에겐 동거하던 동성애인인 레인(하윤경)이 있다. 자신의 딸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는 레인이 자신과 같은 공간에서 사는 것을 불편해 한다. 요양보호사인 엄마가 돌보는 치매환자인 제희는 요양원에서 특별대우를 받는다. 그녀는 해외유학시절 보육원 아이들을 보며 그 아이들의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 내가 되어줄 수 없다면 가족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인권센터를 만들고 해외 입양아들을 돌보았으며, 한국에 돌아와서는 재단을 만들고 국내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가 치매에 걸린 이후 재단 사람들은 병원에 발길을 끊고, 한 달 후엔 요양원에 보내던 지원금도 끊길 예정이다. 엄마는 무연고자이자 기초수급자가 되어 열악한 병동으로 옮겨지게 된 제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가족이 아니기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교육을 받을 만큼 받고, 성실히 일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여자들, 하지만 이 여자들의 삶은 최소한의 인권과 안정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가 위태롭기만 하다. 딸인 그린은 비정규직인 대학 강사이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잘린 동료 강사의 부당 해고를 규탄하는 시위를 주도하다 다친다. 그린의 엄마는 파견업체에 고용된 돌봄노동자이지만 이직을 위해 업체를 방문했을 때 담당자로부터 대학까지 나온 고스펙이라 고용주들이 싫어하니 이력서를 편집해서 다시 제출할 것을 요청받는다.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머물며 교류할 때 서로의 세계가 포개어지는 순간을 뛰어난 영상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한국 독립 영화 중 많은 작품들은 인물들 간의 대화씬을 찍을 때 등장인물들이 모두 보이는 위치에 카메라를 위치시킨 후 대화 전체 또는 상당 부분을 한 구도로만 찍는 롱테이크 고정 마스터 숏을 관습적으로 사용해 왔다. 이 기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작비와 시간 절약을 위한 것이라고 밖엔 볼 수 없을 정도로 작품 안에서 어떤 미학적인 의도도 없이 남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딸에 대하여>는 한 장면을 찍을 때 마다 여러 구도로 컷을 나눠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을 보여준다. 요양원에 있는 제희를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제희가 앉아있는 장면은 한 구도로 촬영해도 무방하지만, 이 영화는 인터뷰어에게 보이는 제희, 엄마의 시점에서 보이는 제희, 그리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제희의 모습을 구별하여 각각 다른 구도에서 찍어 보여준다. 이런 다양한 구도는 제희라는 인물을 단순히 치매에 걸려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노인이 아닌, 한 시점만으로는 포착되지 못하는 다양한 면을 지닌 인격체로서 드러내 보여준다. 그린과 엄마가 처음 마주치는 장면의 연출도 탁월하다. 엄마가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며 현관 계단에 앉아있는 그린을 발견하자 카메라는 그린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그리고 엄마가 화면에 들어오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한 숏 안에서 그 둘을 함께 잡는다. 비록 엄마는 등을 돌리고 있지만 그린과 같은 숏 안에 비춰지고 있다. 개별 숏으로 단절되지 않고 둘을 함께 잡는 이 첫 만남 쇼트는 엄마가 딸이 동성애자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린을 못마땅해 하지만, 언젠가 이들의 세계가 화합할 수 있을 거란 걸 보여준다. 이후에도 엄마는 집에서 그린과 마주칠 때마다 거북해 하는 표정을 보이지만, 카메라는 이들을 나눠서 잡지 않고 굳이 한 숏 안에서 담는다. 비록 항상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등을 지고 있는 모습이더라도. 그리고 노란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어느 날, 엄마가 집에 데려온 제희를 함께 돌보는 씬에서 이들은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다가감의 순간. 영화는 다른 세계들이 서로 같은 공간에서 겹쳐지는 순간을 섬세하게 계산된 미학으로 구현한다. 영화가 끝났다 싶은 시점에 에필로그처럼 이어지는 시퀀스에서 엄마는 길에서 자신의 딸과 비슷한 여자아이들과 스친 후,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엄마는 이제 그녀들의 관계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내 딸을 넘어, 내 딸과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에 대한 포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세계를 응원하는 용기와 사랑을 품고 그녀들은 나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