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 아무것도 없을 것을 알면서도 다시 찾은 그곳에서 - 영화 <피렌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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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없을 것을 알면서도 다시 찾은 그곳에서 - 영화 <피렌체> 송아름(영화평론가) 가끔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왔는지 허망해질 때가 있다. 문제는 이 감정들이 덮치는 순간이 나에게 혹은 내 곁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더 이상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라는 점이다. 어떤 식으로도 대응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찾아든 회한은 더욱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분명히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커리어를 쌓아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가족도 부양해야 한다는 엄청난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지키려 했던 것들이 나의 무신경함을 질책하고 거리를 둔다. 영화 <피렌체>의 석인(김민종)의 상황에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은 크든 작든 많은 이들의 세월이 이 허망함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 때문에 어디선가 필요한 사람이었지만 정작 소중한 이들에겐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외로움으로 남는다. 딸의 원망과 아내의 죽음, 실직까지를 맞닥뜨린 석인을 이해하는 데엔 그리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영화 <피렌체>는 이러한 석인을 젊은 시절 여행지였던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옮겨 놓는다. 피렌체를 떠올리지 못했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색하게나마 자신을 알고 있는 이들 사이에 앉아 술을 마시는 정도였다. 그곳에서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은 듯 보이던 석인의 입은 열리지 않았고 그런 석인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이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이때 떠올린 것, 그러니까 너무나 정신없던 중에도 눈길을 잡아끌었던 메일은 이젠 ‘갈 데도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에게도 어딘가 갈 곳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렇게 떠난 피렌체는 약 30년이 지난 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석인을 맞이했다. 영화는 30년 전 우연히 만나 여행을 함께 했던 젊은 석인과 엔조(해리 벤자민)를 현재의 석인 사이에 불쑥불쑥 끼워 넣으며 지금의 석인과 다른 과거의 석인을, 그리고 전혀 다른 두 사람을 설명해 낸다.
영화 <피렌체>는 석인의 ‘지금’에 집중하면서 자칫 이러한 영화의 한계로 작용할 수 있는 식상함을 벗어난다. 현실에서 많은 것을 상실한 중년 남성이 젊은 시절의 추억을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는 젊었을 때의 마음을 되찾는다거나, 다시금 새로움을 결심하는 식의 다소 환상적인 결말로 흐를 가능성을 품는다. 그러나 <피렌체>는 50대로 접어든, 생기를 찾기 힘든 이 중년 남성에게 함부로 생기를 불어넣거나 혹은 이 짧은 여행으로 쉽사리 많은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 석인은 자신의 속도대로 피렌체를 기억하고 과거를 통해 달라진 자신을 대면한다. 이 사이의 변화는 쿠폴라에 오른다 해도 저 위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잔인한 시간을 깨닫는 것이기도 했다.
석인은 두 번이나 캐리어를 도난당했던 바로 그곳에서 자신의 시계를 벤치 위에 올려둔 채 광장을 떠났다. 그러나 누군가 가져갈 것이라고,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시계는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억울하면서도 죄책감처럼 남아 있는 과거의 시간들은 이처럼 그가 아니면 결코 해결되지도, 정리되지도 않는 것이었다. 이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과거의 시간들은 내내 고인 채로 그를 괴롭힐 터였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그의 시선은 변화한다. 자신의 과거와 비슷하던, 생기 넘치던 젊은 청년을 쫓던 석인의 시선은 천천히 광장을 지키고 있는 중년의 노숙인에게로 향한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하기도 쉽지 않고 왜 이곳에 있는지를 설명하기도 어려운 그와 마주했을 때에야 석인은 편안히, 가장 오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석인은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그의 시계까지도 그에게 넘겨준 채 과거를 향하던 감정들을 매듭짓는다.
석인은 다시 쿠폴라에 오른다.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해 보지 않고 떠나려던 그곳을 다시금 천천히 오른다. 기대에 가득 차 엔조와 함께 오르던 그때와는 다르게 좁은 통로를 오르고 또 오른다. 돔에 올랐을 때, 30년 전처럼 비가 오는데도 터져 나오던 환호는 없지만 석인을 둘러싼 조금은 흐린 풍경과 음악은 지금의 석인이 그때에는 보지 못했던 무엇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해 낸다. 천천히 엔딩 크레디트를 바라볼 때 이 마지막 장면까지 흘러온 석인의 여정은 마치 배우 김민종의 발화처럼 곱씹게 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던 사이 한 배우가 겪었을 시간은 석인의 오랜 인내와 겹치지 않았을까. 그의 얼굴과 눈빛, 목소리에 새겨진 시간은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이의 흔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피렌체>는 이렇게 이야기와 배우, 그리고 시간을 우리에게 건네고 있던 셈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