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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그래도 귀 기울여야 한다, 함께 살아가려면 - 다큐 <청년정치백서: 쇼미더저스티스>
영화 <청년정치백서: 쇼미더저스티스> 스틸컷 이미지



그래도 귀 기울여야 한다, 함께 살아가려면 - 다큐 <청년정치백서: 쇼미더저스티스>


송아름(영화평론가)


꽤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듣고 행동을 본다는 것은.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기에 결국 상대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 알고 있었음에도 그리 도드라지지 않았던 이 불편함은 최근 역사 속에나 존재했다고 들었던 다양한 위기를 겪으며 급격하게 튀어나왔다. 서로에게 결코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극단적 간극은 깊고 넓은 크레바스처럼 날카롭고 위험하게 도사리고 있었다. 내 말이 맞다면 저 말은 쓰레기가 되었고, 저 말은 쓰레기이기에 내 말은 틀릴 수 없다. 결국 각자의 입장에서 모든 사태를 바라보며 갈등은 커졌고 어쩌면 봉합을 기대할 수 조차 없을 것이라는 불안이 엄습했다. 이 불안을 없애기 위해 끌어들인 것은 혐오였다. 상대의 말을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이 만들어 버렸고, 상대를 적의 위치에 두고 난도질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이하 <청년정치백서>)는 바로 이 사이를 명확히 파고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적어도 서로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는 보자고.


영화 <청년정치백서: 쇼미더저스티스> 스틸컷 이미지2


다큐 <청년정치백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정치에 뜻을 품은 청년 김창인과 김현진을 중심으로 30대 청년들의 정치 진입기를 그린다. 공산주의자는 아닌 사회주의자이며 소유는 부정하지 않는 김창인과 내성적이지만 적극적일 뿐 극우는 아니라는 중도 김현진은 각각 정의당과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를 통해 정치에 나서기 위해 분투한다. 자라온 환경, 살아온 삶이 다른 만큼 완벽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은 역시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들이 경험해야 하는 현실은 다른 듯 닮아 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내일에 대한 믿음과 지금 내가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적 기대는 얼핏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하지만 두 사람이 부딪혀야 하는 현실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영화 <청년정치백서: 쇼미더저스티스> 스틸컷 이미지3


<청년정치백서>는 먼저 내가 지지하는 혹은 이해할 수 있던 이들이 어떤 ‘테크를 타’려는지 상세히 드러냈다. 민주적 사회주의에 동의하는 이들을 모으고 그 안에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또 정치에 들어서려는 명분을 찾는 일 등은 김창인이 선택한 정치의 시작이었다. 즉 자신의 신념을 가시화시키고 이를 실천하는 것으로 정치의 이유를 찾는 것, 그의 주변엔 역시나 비슷한 이들이 함께 의견을 교환했고 어떤 것이 옳고 혹은 어떤 것은 멀리해야 하는지 등을 냉정히 따져갔다. 한편 김현진은 젊은 청년의 이미지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또 필요한 이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보다 자신이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해 먼저 생각했고, 이를 지지하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김창인이 생각하는 옳고 그름과 김현진이 생각하는 명암엔 극명한 차이가 있었고 당연히 서로 다른 해석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둘 중 누구를 응원하던 간에 그들이 펼쳐놓은 나름의 정치 입문 방식은 답답함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명분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었을 때에 밖에서 볼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입장은 김창인의 운신의 폭을 좁혔다. 정확히 무엇을 위하는 것일지 모를 극단적인 행동들은 유력 정치인들과의 인사 외에 특별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김창인의 무모함을 탓하게 된다. 분명 두 사람은 옳다고 생각하는 갖은 방법을 이용해봤지만 이쪽도 그리고 저쪽도 특별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의 선택을 살펴보았을 때, 그들은 이미 만들어진 굳건한 정치 논리의 꼬리를 잡고 그 답을 찾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두 청년의 목표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오랜 정치 리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대화의 방식과 누군가가 한 것 같은 타인의 도구화 등은 두 청년이 예의 그 방식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 <청년정치백서: 쇼미더저스티스> 스틸컷 이미지4


바로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청년정치백서>가 굳이 두 사람을 교차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대면하게 하며 상대를 살피게 하는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됐던 정치가 무엇인지, 그것이 왜 늘 비슷한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 그것이 아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은 이제 새로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이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거나 견제하면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창인은 김현진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부러웠고, 김현진은 김창인이 생각하는 순진한 접근이 신기했다. 설사 조롱을 깔고 있을지라도 서로를 다시 보았을 때의 신선함은 그들이 새롭게 나설 수 있는 힌트가 될지 모를 일이다. 바로 이것이 분석 보고서라는 의미가 담긴 ‘백서’가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영화 <청년정치백서: 쇼미더저스티스> 스틸컷 이미지5


<청년정치백서>는 10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두 명의 대통령이 탄핵되고 세 명의 대통령이 취임하는 역사를 훑어가며 그 사이에서 새롭게 정치를 시작하려는 이들에 주목했다. 어찌보면 이들의 모습은 새로운 직업을 찾는, 그러니까 사회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취업기와 유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시간과 스펙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오랫동안 고여있던 흙탕물을 쉽사리 피할 수 없었다. 조금은 얼룩지고 또 가끔은 닦아가며 새롭게 도착할 그곳이 어디일지 명확하진 않을지라도 서로의 이야기에 한번쯤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옳은 그곳에도, 네가 믿는 저곳에도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열어준 혹은 열어줄 이는 없기에, 오히려 상극에 놓인 서로의 존재가 더욱 소중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청년정치백서: 쇼미더저스티스> 스틸컷 이미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