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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동지 밤을 지나 내일에 닿을 환대의 흔적들 - 다큐 <남태령>
영화 <남태령> 스틸컷 이미지



동지 밤을 지나 내일에 닿을 환대의 흔적들 – 다큐 <남태령>  


송아름(영화평론가)


이렇게까지 무시당한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 얼마나 생각이 없고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한순간에 정보가 퍼지고 순식간에 옳고 그름을 확인할 수 있는 이때, 아니 확인이 아니라도 이 사태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우리 앞에 계엄이 선포된 순간 말이다. 뭐 하나 맘에 드는 구석 없던 3년을 견딘 결과가 이것이라는 현실에 기가 찰 즈음, 이 어이없음조차 사치라는 듯 황당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 상황에 할 소린가 싶은 말들이 허공을 날아다녔고, 저게 뭐 하자는 것인가 싶은 행동들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바로 이때, 나에게 가장 소중한 최애의 응원봉을 들고나와 반짝였던 이들이 잠시나마 숨통을 틔워주었다. 응원봉이 만들어낸 물결과 목소리는 우리가 그 구태의연한 생각을 무시해 주겠다는 듯 희망을, 생기를, 활력을 주었고, 힘을 보태고 싶을 때 내가 달려 나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까지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그 힘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하게 발견되었고, 지속될 방법을 마련했다. 그들은 내 목소리를 어디에 주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까지 덜어주며 새로운 저항의 문화를 구성하고 있었다.


영화 <남태령> 스틸컷 이미지2


다큐 <남태령>은 전봉준 투쟁단이 경찰들에게 막혀 서울로 진입하지 못할 때, 그곳으로 달려간 젊은 여성들의 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했다. 오랫동안 농민들을 함부로 대하던 관성은 그곳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었고 이를 두고 보면 안 된다, 저런 행동을 하도록 둘 수 없다는 생각에 남태령을 메운 이들은 혹한을 견디며 농민들을 지켜내고 있었다. 남태령에 도착한 이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이들의 행동은 일사불란했고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남태령 대부분을 채우고 있던 2030 여성들은 이 싸움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법을 아는 듯, 소리쳤고 나누었으며 보호했다. 누군가를 좋아해 나눔을 함께하던 것이 자연스러웠던 그들에게 지금 이곳의 농민들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하는 또 다른 대상이었다. <남태령>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던 그들의 모습은 지금의 2030 여성들이 어떻게 문화적 취미를 사회적 실천으로 녹여내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주며 이들에게 더 깊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영화 <남태령> 스틸컷 이미지3


이들의 적극적인 행동에 당황한 것은 농민들이었다. 시위 때마다 상해(傷害)와 죽음의 기억 앞에 서 있던 농민들에게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행렬이 자신들을 응원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만 평화롭게 행진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들은 결코 평화로울 수 없는 남태령으로 들어섰고, 차 벽으로 막힌 공간 안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내가 마음을 줄 수 있고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는 농민들에게 안도와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혹여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이 있을까 싶어 켜놓았던 라이브 방송은 현장의 추위와 어둠을 고스란히 담아냈고, 응원하고 싶지만 미처 가지못한 이들은 그곳에 필요한 것을 찾아 바삐 움직였다. 혹한 속 따뜻한 음식이 속속 도착했고, 작은 편의점을 차려도 될 만큼의 물품이 순식간에 쌓였다. 난방이 되는 버스까지 도착했을 때 정말 밤을 새워 함께하는 이들을 돕고 싶어하는 절박함까지가 남태령에 넘실대고 있었다. 결국 트랙터가 용산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던 긴 동지 밤, 여성들은 이 하룻밤 사이에 가능성을 품고 또 발산하며 세상을 바꿀 것임을 천명했다.


영화 <남태령> 스틸컷 이미지4


이처럼 <남태령>이 여성들에게 주목한 것은 그들이 가진 열정과 실천의 힘, 그리고 그것이 보여주는 가시적인 성과들이었다. <남태령>은 여성들의 연대가 어떤 마음으로 가능한지 얼마나 다양한 의제에 열려 있는지를 서로 다른 주제 그리고 지역을 오가며 덧붙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응원은 늘 멸시 속에 오가던 배달 기사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했고, 자유롭고 재미있는 발언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며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사이사이 드러나는 나, 그리고 우리의 존재는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또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새겨넣고 있었다. 오랫동안 존재했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는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는 인식 아래 아마도 점점 더 퍼져 나갈 것이다(단언컨대 이 영화를 본 혹은 볼 모든 관객은 이 두 마디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저 그 자체를 인정하겠다는 이 말은 많은 이들에게 힘을 줄 것이다.)  


영화 <남태령> 스틸컷 이미지5


눈과 귀를 의심케 했던 헛짓으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났고, 당시를 조명하는 다큐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남태령>은 이 작품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먼저 개봉한 작품들이 당시 계엄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벌어졌던 긴박한 상황이나 역사적 맥락에서 그때의 선포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에 집중했다면 <남태령>은 2024년 12월 3일의 순간에서 시간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거리를 두며 남태령 대첩 속 기억들이 계엄과 더불어 잔존하고 있는 거대한 문제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조명했다. 2030 여성들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제 그들은 사회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어려움과 고통을 반갑게 맞았고 이에 유쾌하게 대응했으며 오랜 공력을 대차게 발휘하며 많은 이들을 지켜냈다. 누가 뭐라 하든 유구하게 핍박받으며 쌓아온 그 공력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꽤 체계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역시나 유구하게 그래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