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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중첩된 불균형이 쌓은 위기의 흔적 - 영화 <군체>
영화 <군체> 스틸컷 이미지



중첩된 불균형이 쌓은 위기의 흔적 – 영화 <군체>


송아름(영화평론가)


특정 괴물이 이렇게나 오랫동안, 진화까지 해가며 출몰한다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의식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살아 있고, 무차별적으로 달려들어 세를 확장시키는 ‘좀비’는 다양하게 변주하며 우리 곁을 배회해왔다. 영화에서 굳이 ‘좀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특징을 지닌 괴물들은 얼마나 기괴하게 날뛰며 공격할 것인지, 또 인간들은 이것을 어떻게 잠재우려 분투하는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며 그 파괴적 속성에 대한 재미를 맛보게 했다,  최근 조금은 잠잠했던 좀비의 이야기는 <군체>에서 다시 시작됐고, 이제 좀비는 알 수 없는 곳에서 갑작스레 나타나거나 누군가의 실수로 퍼진 바이러스가 아닌 명확하게 의도를 가진 생물학적 테러로 재탄생했다. 감염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이들과 그것이 이상적인 신인류가 될 것이라는 한 과학자의 망상, 이 사이에서 좀비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군체>는 오랫동안 고여있던 괴물의 설정에 있어 새롭고 흥미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좀비가 학습하고 이를 깨닫는 것, 서영철(구교환)의 생각을 공유하는 방식은 좀비의 내적 설정이나 외적인 행동에 있어 신선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목격한 내용을 학습하며 몸을 곧추 세우는 모습이나 자신들의 숙주를 보호하게 위해 좁은 복도를 막은 뒤엉킨 모습 등은 전에 없던 괴물들의 형상을 나열하며 신선한 볼거리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하나의 집단으로 움직이고 그것에서 지워지는 개별성과 통제에 대한 기묘한 우상화 등을 효율적으로 보여주며, 믿을 수 없던 현실의 상황들을 비춰볼 수 있는 알레고리로 적절히 작용하기도 했다. 그만큼 좀비의 설정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품은 채 새로운 이야기로의 시작을 알리는 듯 했다.


영화 <군체> 스틸컷 이미지2


그러나,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군체>의 장점은 딱 여기에서 그친다. 이 ‘군체’들에 대항해야 하는 상대, 그러니까 생존자들의 설정은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았고 심지어 몇몇 인물들은 왜 그곳에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들게 했다. 이 불균형은 <군체>를 쉽사리 좋은 영화라거나 재미있는 영화로 판단을 내리는 데에 주저하게 만들었고, 그만큼 빠르게 화제의 영역에서 멀어졌다. 굳이 이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이러한 약점이 사실 <군체>의 연출, 연상호 감독의 여타의 영화에서도 발견되는 양상이라는 점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이 보여준 흥미로움은 기이한 설정과 괴물들의 세상일 뿐, 이곳에서 살아가거나 살아남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대항도 기대할 수 없는 갇힌 세계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군체>가 그랬던 것처럼, 연상호의 작품은 분명 이야깃거리가 많은 화두를 던지면서도 금세 논의가 사그라드는 양상을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연상호 감독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것은 <부산행>(2016)이었다. 협소한 기차라는 공간과 이 기자가 어딘가에 당도하면 끝날 것이라는 기대로 임팩트 있는 긴장을 만들어냈던 기억을 꼼꼼히 헤집어보면 이 작품의 인물이나 좀비의 특성 등은 이미 여러차레 반복되었던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즉 <부산행>은 괴물의 공격을 피할 영역을 최소화하면서 긴장을 끌어낸 셈인데, 여기에 대항했던 이들은 소수의 힘센 남성들과 가장 취약한 임산부와 아이, 그리고 친구를 차마 끊어내지 못했던 몇 몇의 인물들이 잘 차려진 듯 놓여 있을 뿐이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기차라는 공간에 있었을 뿐, 이야기가 흐르면서 점점 흐릿해지는 인물들의 성격들은 더 이상의 논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영화 <군체> 스틸컷 이미지3


물론 이는 장르영화의 한 특징일 수 있다. 장르영화의 컨벤션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역시 감독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며, 사소한 아이디어가 영화의 성패를 가늠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때의 ‘성패’가 장르의 진전과 상관없는 영역에서의 성취을 가리키며 성공으로 규정된다면 영화에 있어 그리 큰 영향력을 가진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괴물의 집중했던 연상호의 세계가 이들이 사라진 후 그러니까 괴물을 배제한 채 인간들의 삶에 집중했던 디스토피아 <반도>(2020)에서 얼마나 쉽사리 무너졌는지를 떠올린다면 이 약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반도> 속 괴물로 변해버린 이들은 인간을 위협하기 힘든 위치로 설정되었고, 인간들은 허둥대며 길을 잃었다. 이때의 한계는 사실상 그대로 <군체>로 이어지고 있었다. 

괴물이 등장하는 재난의 상황은 영화적 스펙터클을 완성하는 데에 상당한 희열을 안겨주는 요소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만 집중했을 때, 그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스토리는 평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군체>는 이를 매우 전형적으로 보여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스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로 진입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상상력이 아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이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이들로 눈을 돌리는 것은 영화적 세계의 새로운 구축을 의미할 것이다. 이것이 세계관을 쌓고 넓혀나갈 수 있는 방식이며 감독으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점유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의 전작, 그러니까 비단 좀비의 세계뿐만 아니라 여타의 인간들의 삶을 조망한 작품을 떠올렸을 때 필히 그려지거나 혹은 설명되어야 하는 것들이 흐려지고 흩어진다. 괴물과의 세상을 지속하려 한다면 그 맞은편엔 누가 서 있는지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거나 혹은 죽어가는 삶이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지금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