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 그들을 그들만의 ‘하나’로 바라보지 않기를 - 영화 <하나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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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을 그들만의 ‘하나’로 바라보지 않기를 - 영화 <하나코리아> 송아름(영화평론가) 내가 살아온 곳을 특별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은 낯선 일이다. 내 기억이 머무는 순간순간 당연한 배경처럼 떠오르던 것들이 상황에 따라 고르고 골라 설명해 내야 할 것이 된다. 피곤하겠지만 잠시나마 숨기는 것이 누군가에겐 생존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이는 <하나코리아>의 혜선(김민하)이, 그리고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었다. 북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다시 남으로 내려와야 했던 혜선은 그래서인지 별로 말이 없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기보다 그는 지금 말을 할 수 없었다는 쪽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어떻게 남한까지 내려왔는지, 누군가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왔는지 등이 단편적으로 설명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남한에서 자신의 기억은 선택적으로 이야기하거나 숨기는 것이 편안한 고통 혹은 치부였으니까. 이 사이 유일하게 그가 숨기지 않았던 것은 북에서 홀로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는 것, 이 목표 뿐이었다.
<하나코리아>의 혜선의 상황만 놓고 보면 그의 침묵과 그 이유는 차고 넘칠 만큼 예상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가 남으로 오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을지, 그리고 이 낯선 상황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들은 이미 많이 알려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역시 혜선이 중국에서 겪을 뻔한 일들이나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끼리 일어날 수 있는 갈등 등을 영화 곳곳에 놓아두면서 혜선의 두려움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코리아>는 혜선을 이 상황 속에 그대로 두지만은 않았다. 북한 이탈주민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게 위해 교육을 받아야 했던 하나원이라는 공간이나 앞으로의 삶을 꾸릴 수 있는 아파트를 배정받는 모습들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혜선은 말이 많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말을 쏟아낸 순간이 있었다. 어머니를 위해 돈을 벌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어필하던 때 혜선은 절박했고 솔직했다. 이러저러한 일들이 혜선을 괴롭혔고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그렇게 마련한 돈은 어머니를 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혜선의 절망은 빠르게 지나가는데 이는 <하나코리아>가 혜선의 삶을 조금씩 옮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혜선의 목표가 어머니를 살리는 것에 있었다면, 그러니까 혜선의 삶 전체가 두고 온 바로 그때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의 삶은 빛을 잃었을지 모른다. 그에게 과거는 비슷한 상황을 겪은 이들에게조차 쉽사리 털어놓기 어려운 것이었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조선족이라고 얼버무려야 하는 고통을 품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코리아>는 이 고통에 집중하지 않는다. 혜선이 새로운 삶을 살고 또 살아야 한다는 믿음 아래 그가 새로운 날들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순간을 담아내는 것이다.
곱씹어보면 그가 절박함이 아닌 단호함을 실어 말하던 때가 있었다. 하나원에서 직업교육에 대해 설명할 때 혜선은 기술이 아닌 학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왜 굳이 어려운 길로 들어서느냐며 난감해하는 이들 앞에서 혜선은 어려운 것은 해내면 된다며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비슷한 길로 들어서는 많은 이들 사이에서 혜선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말했고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이러한 혜선의 모습은 그가 이곳에 적응해야 하는 한 집단이 아닌 이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개개인으로 새롭게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 했다. 즉 그들은 이곳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 이곳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싶어하는, 그래서 과거가 지금을 지배할 이유가 없는 이들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환경이 변했고 그들의 삶도 변했지만 그들을 보는 시선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하나코리아>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며 혜선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혜선은 간호사가 되어 첫 실습에서 자신이 북에서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를 듣고 있던 이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비슷한 말투를 쓴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이 마지막 장면은 그들이 함께하는 이 사회가 특별할 것 없는다는 점을, 그리고 그들이 그들끼리의 삶만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하나코리아>에는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북한 이탈주민 영화 속 흔적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약 15년 전 <무산일기>(2011)의 승철이 125로 시작되는 주민번호 앞자리를 낙인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주눅들었던 모습에서 최근 <3670>(2025)에서 북한 이탈주민 커뮤니티를 넘어 또 다른 곳으로의 적응과 변화를 꾀하는 철준에 이르는 자취가, 그리고 그 사이사이 종교와 각종 커뮤니티에서 안위하고 혹은 상처받던 이들의 모습들까지 말이다. <하나코리아>는 이 자국들을 꾹꾹 눌러담으면서도 익숙한 이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많은 이들을 대면해야하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첫 인물을 세워내었다. <하나코리아>는 이들을 경유하면서 이제 그들의 과거가 그들의 삶을 한정짓는 무엇이 되지 않기를, 그들에게 생존만이 아닌 그 이후의 삶이 있기를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응원은 이제 우리 몫으로 넘어온 것일지 모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