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 추억의 권리,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을 위하여 - 다큐 <콘크리트 녹색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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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권리,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을 위하여 – 다큐 <콘크리트 녹색섬> 송아름(영화평론가) 계절이 바뀔 때의 냄새, 그것을 느끼게 해주던 풍경, 이 사이를 비집고 들려오던 소리, 그곳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누군가. 내가 언제,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것은 이처럼 기억에 새겨진 흔적들이다. 이 기억을 자극하는 어느 순간들이 다시 찾아올 때, 그것은 추억이 되어 나를 잠시 다른 시간의 다른 곳으로 흘러들게 한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어딘가에 당도한 순간 아른거리며 쏟아지는 감각들은 우리를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어떤 장소는 곧 나의 과거이자 기억이며, 나의 기억이 숨 쉬고 있는 곳 또한 나의 것이 된다. 그래서 어딘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역사가 날아가는 것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좋았던 그 모든 스침들이 휘발되는 일이다. 우리가 어딘가가 그 자리에,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흔적을 찾을 만큼만이라도 남아 있길 바라는 것은 그것이 곧 우리였기 때문이다.
다큐 <콘크리트 녹색섬>은 추억에 대한, 추억을 마주하는 자세에 대한 기록 그 자체이다. <콘크리트 녹색섬>은 재개발을 앞둔 개포주공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던 풍성한 나무와 꽃들, 그것이 풍기는 내음, 그곳에서 놀았던 기억과 문득문득 마주하는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이 이 아름다운 곳을 어떻게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빽빽한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또 나의 어린 시절을 궁금해하는 자녀들은 이곳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등을 담백하게 담아내며 한 공간에 얼마나 많은 마음들이 자리할 수 있는지를 써 내려가는 것이다. ‘개도 포기한 동네’라던 개포동이 이제는 ‘개도 포르쉐를 몰고 다니는 동네’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천지개벽할 변화가 일어났지만 <콘크리트 녹색섬>은 지금의 그 가치로 과거를 덮으려 하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포착해 낸다.
이 작품은 나무를 통해 추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려 했다. 나무들은 이렇게나 오랫동안, 이렇게나 아름답게 계절을 알려줬고, 산책로가 되어줬고, 서울 한복판에서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해줬다. 아파트의 모든 시간을 바라보았던, 그 사이 그곳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던 나무였지만, 사람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아파트를 다시 지으려면 나무를 모두 베어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콘트리트 녹색섬>은 이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이 나무들을 살리고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무숲을 걷는 사이사이, 나무의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순간 다큐는 정말 이것이 없어져도 되느냐고 묻고 있었다. 분명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담당자의 이야기 뒤에도 나무들은 베어졌고, 재개발을 적극 찬성하는 이들은 베면 안 되는 나무의 표식들을 잘라내어 나무가 쓰러지게 만들었다. 개발이라는 분쟁 속에 나무는 볼모가 되었고 조금씩 그 흔적은 사라져갔다.
<콘크리트 녹색섬>은 무턱대고 이 공간을, 그리고 나무를 보존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기록은 계속 베어지는 나무를 실제로 목격하며,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것만큼은 남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무의 존치 여부를 결정하는 이들은 나무를 둘러볼 수 있는 공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를 통해서만 들리는 예의 그 감정없는 목소리는 담당 공무원들이 나무에 새겨진 시간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을 충분히 드러낸다. 다큐는 나무들을 향한 이 기록에 그들을 한 번도 등장시키지 않으면서 추억을 지키려는 이들과 그것을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이들의 거리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반복적인 질문에 결국 담당자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느냐는 질문을 던지고야 만다. 도대체 그깟 나무가 무엇이냐는 의문을 가진 그들은 결국 많은 이들의 역사를 황량한 부지에 던져넣고 허탈감에 빠지게 한다.
그럼에도 <콘크리트 녹색섬>은 포기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어디에선가 찾을 수 있을까 싶어 표식을 남겼던 나무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가 무시하듯 별것 아니라며 치워버렸던 추억들은 이렇게 또 다른 장소에 또 다른 이야기를 담은 채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강남’ ‘개포동’이라는 지명은 시세라는 눈에 보이는 가치 이상으로 잘 이야기되지 않았다. 아니 그 가치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는 듯 여겨졌다. 그러나 그곳에 살았고, 그때를 간직한 이들에게 개포동의 시세는 추억과 연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나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무들이 보존되어야 하는 것은 강남의 한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들은 반세기를 서울의 시간을 함께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선사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측정할 수 있는 가치는 차고 넘치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