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름의 지금까지, 앞으로도
| ‘어항’에 갇힌, ‘바다’에서 숨 쉬지 못하는 이들에게 - 영화 <캐리어를 끄는 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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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항’에 갇힌, ‘바다’에서 숨 쉬지 못하는 이들에게 - 영화 <캐리어를 끄는 소녀> 송아름(영화평론가) 벌써 10년도 더 전, 영화 <거인>(2014)에서의 영재(최우식)를 처음 봤을 때의 당혹스러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최대한 웅크린 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주변은 그가 조용히 숨도록 두지 않았다. ‘이삭의 집’이라는 위탁 시설에서 원장 부부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숨죽이며 내쳐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절박함, 그것은 분명 있었음에도 거의 꺼내지지 않던 불안이었다. 이 와중에 동생까지 맡아달라며 찾아온 아버지에 대한 분노 역시 그랬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얼마나 염치없는 어른들 아래에서 대신 부끄러움을 느끼고 살아가야 하는지는 잘 표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거인>은 아이들이 물리적인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자신의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었다. 그것은 사랑의 문제를 넘어 말 그대로 생존의 문제였다.
영화 <캐리어를 끄는 소녀>의 영선(최명빈)을 보았을 때 영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영선은 입양이 되었지만 사업에 실패한 양부모에게 버림받았고 그를 돌봐줄 어른은 없었다. 자신을 돌봐 줄 가능성이 있는 이들에게 최대한 맞춰주려는 노력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영선은 영재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조용히 주어진 것에 맞추어 원장 부부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그 자리를 지키려던 영재와 다르게 영선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품어줄 수 있는 집이 생길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행동했다. 그리고 ‘열다섯’ 밖에 안 된 ‘애’에게 세상이 얼마나 냉혹하고 잔인한지도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영선은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긴장을 놓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캐리어를 끄는 소녀>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영선이 자신을 돌보아줄 누군가를 갈망하는 과정을 세세히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영화는 쉽사리 설명되지 않는다. 영선이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수아(문승아)의 집은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공고히 세워진, 기이한 세계였기 때문이다. 테니스에 소질은 있으나 상황 상 코칭을 받을 수 없는 영선에게 선생님은 수아의 집을 소개해 준다. 같은 나이의 수아에게 테니스 파트너를 해주고 돈을 받는 것, 그것이 영선에게 처음 주어진 임무였다. 영선은 처음 수아의 집을 보고 자신의 상황을 ‘어항’에, 그리고 수아의 집을 ‘바다’에 비교하면서 그 엄청난 차이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살기를 꿈꾸기 시작한다.
영화는 영선만큼이나 외로운 수아의 서사 역시 꼼꼼하게 풀어 놓았다. 딱히 테니스를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소질이 있지도 않지만 자신 때문에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아빠 성우(김태훈)를 위해 수아는 그저 버티는 중이다. 성우는 자신의 승부욕과 아쉬움을 수아에게 그대로 투영하며 딸이 자신만큼 성장할 것이라고, 그것이 딸을 위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성우가 딸을 대하는 방식이 분명 폭력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 지영(유다인)은 이를 그저 지켜볼 뿐이다. 자신의 딸이 너무나 힘들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 오늘만 넘기면 지나갈 것을 기대한다. 수아가 성우보다 지영에게 더욱 분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영은 자신의 딸을 구해주지 않는다.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늘 살얼음이 낀 듯한 분위기, 그래서 오히려 영선이 ‘완전히 혼자’인 것을 부러워하는 수아가 영선과 함께 놓여 있었다.
영선과 수아의 겹친 서사는 이 작품이 보호가 필요한 아이에 대한 서사를 넘어 상처받은 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그리고 그것이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짐작케 한다. 영선이 수아의 집에 들어오기 위한 노력과 그것의 거부는 영선에게도 상처를 줬지만, 한편으로는 수아의 집에서 덮어놨던 많은 문제들이 튀어나오는 계기이기도 했다. 서로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맞물린 영선과 수아는 그렇게 서로와 어른들의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열다섯’의 ‘애’ 두 사람의 미숙한 행동은 어른들이 감춰놨던 상처들을 건드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어른들 역시 얼마나 미숙한지를 폭로하는 것이기도 했다. 차압 딱지가 붙을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혼자 둔 채 집을 나가버린 영선의 양부모, 아이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게 져주라던 과거 선수 출신의 성우, 이 상황만 모면하고자 아이에게 안정제를 몰래 먹이는 지영의 모습 등은 아이들의 미숙함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어른들의 모순 속에서는 해결할 의지조차 없는 상처가 곪고 있었다.
<캐리어를 끄는 소녀>는 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영선과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부담에 갇힌 수아를 통해서 이 세상이 얼마나 상처를 머금고 굴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며 수아의 집은 가족이 아닌 영선을 밀어냈고 상처투성이인 채로 그 자리를 지키려 했다. 영선은 결국 보육원으로 돌아오면서 ‘또’ 이곳으로 온 이가 되어 버렸고 결국 그렇게 하고 싶었던 테니스 라켓까지 버린다. 영선을 보육원으로 데려온 수녀는 이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 반겼지만, 사실 영선이 어떻게든 잡고 싶었던 것은 가족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던 친구는 영선이가 계속 테니스를 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영선은 혼자가 되었지만 또 그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고 테니스를 함께 칠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다. 영선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될 수는 없겠지만 보호 속에서만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영선은 이제 깨달았을지 모른다. |











